울고 있는 '민식이법' 여전히 위험천만한 어린이보호구역

by 올리브노트
10109_20219_1024.jpg 어린이보호구역 내 규정속도는 30km/h입니다.

지난 9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아직 꽃을 채 피우지 못한 9살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였습니다. 고(故)김민식 군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고 김민식 군이 떠난 자리엔 신호등도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었습니다. 생때같은 자식을 앞서 보낸 부모는 두 번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장치 등을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사고 얼마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꺼진 관심에 민식이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다행히 고 김민식군 아버지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해당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온 국민이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0109_20218_2833.jpg 지난 19일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민식이법'이 빠르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민식이법이 포털 검색어 상위에 오르는 등 많은 관심을 받은 다음날 아침, 올리브노트 기자들이 서울 시내 몇몇 어린이보호구역을 찾았습니다. 지난해 올리브노트에서 관련 기사를 취재한 지 1년 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어린이보호구역은 여전히 위험천만한 곳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어린이보호구역 도입 20여년..여전히 넘쳐나는 불법차량 )

10109_20220_1226.jpg 어린이보호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주정차 차량이 즐비합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위험 운전 여전..과속·신호위반 등 불법 행위 수두룩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건 제한 속도(30km/h)를 지키지 않고 쌩쌩 달리는 차량들이었습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앞에서 만난 김소혜(38세) 씨는 "아이를 데려다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면서 "이렇게 작은 아이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도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들이 차에 가려 사고 날 확률이 높아 법적으로 금지된 주정차 차량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학교 지킴이로 일하고 정남식(52세) 씨는 "학교 앞이라서 주정차를 하면 안 되는데 오히려 더 많은 거 같다"며 "방범용 CCTV는 단속용이 아니라는 걸 동네 주민들이 거의 다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매일같이 얘기하는 것도 지친다"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앞인데도 그러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10109_20225_2533.jpg 등굣길에 만난 중학생 이태호(14세) 군은 "학교 앞이라고 속도를 줄이는 운전자는 잘 못 본 것 같다"며 "친구들이랑 학교 앞에서 사고 날 뻔 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단속 카메라와 현재 운전자의 주행속도가 나오는 알림판 등의 다양한 장치가 있는 곳은 운전자들의 주의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요. 택배 배달 기사 김정훈(29세) 씨는 "배달에 쫓기다 보면 속도를 높이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여기 학교 앞에는 현재 내 속도가 안내판에 뜨니까 의식적으로 감속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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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 장비가 잘 마련돼 있었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입니다. 주행 속도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특히 눈에 띄었고,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있는 건 물론 횡단보도에서 차도 쪽으로 발을 디디면 '위험하니 인도 안쪽으로 들어가라'는 음성 안내도 나왔습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장치 대부분 미비..'횡단보도만 덜렁'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켜줄 장치들이 제대로 정비된 어린이보호구역이 극히 드물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어린이보호구역 중 과속 단속 장비가 설치된 곳은 820곳으로 전체의 5%에 불과합니다. 실제 올리브노트가 찾아간 총 10 곳의 어린이집 유치원 초 중등학교 중에선 단 한 곳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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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 앞 횡단보도입니다. 차량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라 과속하는 차량이 많아 신호등 설치가 시급해 보였습니다.


10곳 중 9곳의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없었습니다. 도로 바닥에 '어린이보호구역·제한속도 30km/h'의 문구와 표지판 등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횡단보도를 앞에 과속 방지턱이 있는 곳이 두 곳이었고요.

10109_20222_2037.jpg 절반 이상의 어린이보호구역에 방범용 CCTV는 마련돼 있었지만 과속 단속 카메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곳은 방법 CCTV 카메라가 있었지만 과속 단속 카메라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 곳은 현재 주행속도가 나오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보호구역임에도 제한 속도가 50km/h인 곳도 있었습니다.

10109_20224_2423.jpg 이 어린이보호구역은 차량 이동이 많고 정체가 자주 되는 곳이라는 이유로 제한 속도가 50km/h로 규정됐습니다.

지난 2014년부터 5년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2458건에 달합니다. 이로 인해 31명이 숨졌고, 2581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이런 실태에도 현행법상 어린이보호구역 내 단속 카메라 설치는 필수가 아닙니다. 그러니 설치율이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처벌 규정 역시 솜방망이 수준입니다. 사고를 낼 경우 5년 이하 금고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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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속도를 안내해주고 CCTV도 장착돼 있지만 고장난 안전 장비입니다. 안전 장비를 설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기적인 점검도 필요해 보입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을 설치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며 사고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했을 때 처벌을 강화(△3년 이상 징역 △12대 중과실 교통사고 사망 발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도주차량 운전자→사고차량 운전자로 수정)하는 게 골자입니다. 민식이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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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보호구역, 반드시 알아야 할 교통법규


어린이보호구역은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 1995년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관리에 관한 규칙'으로 제정됐습니다. 최근엔 '스쿨존(School Zone)'이라고 더 많이 불리기도 합니다. 보통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주요 출입문에서 반경 300m 이내의 통학로를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며 이 구역 내 교통 시설과 교통 체계를 어린이 중심으로 바꿉니다.


법이 지정된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법규를 제대로 인지하는 운전자는 미미합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지켜야 하는 중요한 교통법규 중 하나는 △운행속도를 30km/h 이내로 줄이는 겁니다. 속도를 30km/h 이하로 제한한 건 사고가 났을 때의 생존율을 고려한 건데요. 관련 연구 결과 30km/h로 주행 중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생존율이 90%로 높은 반면 속도를 60km/h로 올리면 생존율은 15%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를 조사한 결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보행자를 추돌하거나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대체로 △주정차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도 유의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키가 작아 주정차한 차량에 가려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차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학부모는 학교 앞에서 5초 정도 차를 세울 수 있습니다.


또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는 △일방통행이 많습니다. 역시나 교통사고율을 줄이기 위해 이면 도로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 △자동차의 통행을 아예 금지하는 곳도 있으니 어린이 보호구역 표시가 보이면 교통 표지판 등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임성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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