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생 안 필요해"
태평이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런 대답이 나왔다.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 건 혹시나 혼자라서 외롭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중에라도 아이가 동생을 원할 때 '네가 괜찮다고 했잖아'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고 싶었던 것 같다. (역시나 나는 이기적인 엄마다)
동생이 없어도 되는 이유까지 들으면 나로서는 상당한 안도감을 느꼈다. 바로 '엄마랑 더 같이 있고 싶다'였다. 나의 결정을 합리화 하기 딱 좋은 구실이었다.
태평이는 어린이집에 일찍 다닌 덕분(탓?)인지 눈치가 빠르다. 아마도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동생이 생기면서 엄마의 우선순위에서 살짝 밀린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게다가 항상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고 분명 동생이 잘못했는데 언니나 형이라는 이유로 혼나는 걸 보니 더 동생이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게다가 이 구실은 꽤나 강력했다. 시댁 어르신이 둘째를 왜 낳지 않느냐는 말에 '태평이가 싫대요'라고 하며 태평이에게 동의를 구하고 태평이가 "응. 싫어"라고 대답해주면 더이상 뒷말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둘째를 낳지 않는 책임을 대놓고 어린아이에게 떠맡겨 왔다.
어쨌거나 덕분에 지난 3~4년간 둘째에 대한 부담 없이 편하게 살았는데 얼마 전 태평이가 진지하게 내게 말했다.
"엄마 이제 생각해보니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다 동생이 있는데 나만 없으니까 좀 그래. 그리고 외로워. 심심하고"
이럴 수가! 말 바꾸기에 나선 태평이 앞에서 당혹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외롭다니! 엄마 아빠가 이렇게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외롭다는 말이 나오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생각은 바뀔 수 있는 거고, 부모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거니까.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니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 더 성장했나보다ㅎㅎ)
그날 밤, 남편에게 태평이가 한 말을 꺼냈다. 그는 '기다렸냐는 듯' 본인 역시 같은 생각이라며 태평이의 편(?)을 들었다. 남편의 주장은 이랬다. "첫째, 태평이에게 동생이 없으면 우리가 평생 놀아줘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둘째, 동생이 있어야 서로 나누는 걸 알아 이기적이지 않게 클 수 있다. 무엇보다 나중에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걸 태평이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아픔이다"는 거였다.
나는 즉시 반박에 나섰다. "우선 동생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나 역시 오빠가 있었지만 평생 나랑 놀아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둘째 무녀독남(혹은 무남독녀)이라고 해서 이기적이라는 건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오빠가 있어 오히려 늘 뺏긴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내걸 챙기려고 했다. 그래서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내 친구 김XX은 무남독녀라 모든 걸 다 받고 자라서 그런지 이타적 성향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빨리 죽지도 않을 거고 세상에는 혼자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것들이 있다" 고 말이다.
서슬 퍼런 내 눈빛에 더 이상 얘기했다간 싸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편은 '둘째에 대해선 전적으로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역시 남편의 가장 큰 임무는 짜증난 아내의 총알받이 인가.. 급 미안함이.. 이렇게 또 더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내 배에서 열 달을 품고 내가 아파서 낳고 내가 힘들게 모유수유 해야 하는데, 내 의견에 따라야지!'라며 속 편하게(?)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태평이가 쏘아 올린 '둘째'에 대한 공은 계속 내 머릿속에서 튕겨 다녔다.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을 때 그렇게 짠해 보일 수가 없고, 1년에 연락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친정 오빠가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왔다는 얘길 했을 때 내 부모를 함께 책임질 동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며 의지가 됐다. 어느 날은 상갓집에 갔는데 텅 빈 눈으로 혼자 오도카니 서 있는 지인을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4남매가 서로 토닥이며 슬픔을 이겨내던 또 다른 지인의 모습과 비교되며 더 구슬퍼 보였다.
그렇다고 둘째를 낳으면? 현실은 그리 따스하지만은 않을 거다. 다시 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일단 임신 마지막 달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고 출산할 때는 정말 딱 죽을 뻔했다. 불타는 돌덩이 같았던 나의 가슴과 너덜너덜 해졌던 나의 XX. '모유수유-응가 처리-이유식 만들기-밥 먹이기-기저귀 갈기-빨래-청소-아기 재우기'의 무한반복 일과로 하루하루 살아가며 '나'를 찾아 헤매었던 육아휴직기와 그야말로 전쟁 같았던 워킹맘의 삶.
그나마 그땐 아이가 하나였지만 곱하기 둘이라.. 게다가 터울도 져서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게 다를 게 뻔하다.
누구의 의견을 먼저 들어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땅끝까지 한숨이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은 이거다. 과연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나'의 페이지를 고이고이 접어두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페이지를 행복하게 써나갈 수 있을까?
'하늘이 주신다면 감사히 받아야 하는 것'이 새 생명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 있다.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가보다.
임성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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