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
"태평이 어머님이신가요? OO어린이집인데요. 입소 가능하게 돼서 연락드려요. 그런데 학기 중이라서 당장 결정하기 어려우실 것 같으니 생각해 보시고 일주일 내로만 연락 주세요"
태평이가 XX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해 다니고 있던 중 걸려온 OO어린이집의 입소 연락은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뒤집어놨다.
3년 전 XX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에서 가장 인기 많은 OO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뒀다. 그 외에 두 곳 정도 더 대기 신청을 했었고 거기서도 연락이 왔었지만 XX어린이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바로 '거절'했다. 하지만 OO어린이집은 달랐다. 지금 이 시기에 다니기 딱 좋은 장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OO어린이집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그야말로 코 앞에 있는 어린이집이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를 가야 하는 XX어린이집과는 거리 차이가 상당하다. 최근 등원을 담당하고 있는 태평이 아빠가 지각이 잦아지던 터라 더욱 장점으로 느껴졌다.
또 어린이집으로 등록돼 있지만 원칙이나 프로그램 등은 유치원을 표방하기 때문에 학원 같은 곳을 보내지 않아도 다양한 특별활동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XX어린이집은 오전 시간에는 누리과정을 하고 오후 시간엔 자유놀이 시간을 많이 준다. 반면 OO어린이집의 경우엔 오전 시간에는 누리과정을 하지만 오후 시간에는 음악과 미술, 영어, 중국어, 체육 등 다양한 특활 프로그램을 요일별로 나눠 배운다. 마침 태평이가 어린이집이 지루하다는 얘기를 하던 때라 다양한 특별활동을 한다는 점이 끌렸다.
대개 어린이집은 '보육' 기관이라서 선생님이 엄마처럼 아이를 일일이 챙겨주고 보듬어주지만 이곳은 유치원을 표방하는 만큼 가능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교육'하는 점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7세에 학교와 비슷한 분위기를 먼저 경험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유치원으로 옮기려는 고민을 하고 있던 때라 더 갈등이 됐다.
무엇보다 XX어린이집에서 태평이와 단짝인 친구가 다음 학기부터 영어유치원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어린이집에서 항상 이 친구와만 붙어 있기 때문에 친구가 떠나고 나면 분명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거라고 걱정하고 있기도 했다.
물론 어린이집을 옮기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태평이는 매우 매우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적응이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특히나 학기 중이니 얼마나 힘들어할지 불보듯 뻔했다.
△꽃피는 봄과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 알록달록 단풍진 가을에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느끼기 충분했던 XX어린이집의 놀이터. 꺄르르 꺄르르 이곳에서 뛰어 놀던 태평이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또 XX어린이집은 아무리 추운 날에도 야외 놀이터에서 30분씩은 뛰놀게 한 반면 OO어린이집은 실내 체육활동으로 대체하는 점이 걸렸다. 워킹맘이라서 놀이터에 태평이를 자주 못 데리고 나가는데 어린이집에서 이를 대신해주니 개인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최근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터지면서 '사립'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OO어린이집은 사립어린이집이었고 XX어린이집은 국공립이었다.
각 어린이집의 장점과 단점을 두고 조금 고민했지만 괜히 피곤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옮기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XX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는 얘기를 하니 태평이도 본인과 관련된 이야기라 집중해 듣기 시작했다. 그러곤 의외의 말을 했다. "OO어린이집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거였다.
어차피 옮기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태평이가 원하니 다음날 늦은 오후 OO어린이집을 찾았다. OO어린이집은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영아반이 많았던 XX어린이집은 정적이고 조용한 분위기인 반면 OO어린이집은 5세부터 다니는 곳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활기차고 동적인 분위기였다. 교실을 둘러본 후 원장 선생님한테 교육 프로그램 설명까지 듣고 태평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잠들기 전 태평이에게 OO어린이집에 대해 물었다. 태평이는 "영어도 매일 하고 중국어랑 바이올린도 가르쳐 준다니 재미있을 것 같아. 갈래!"라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었기에 나와 남편 둘 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 뒤로도 일주일 가량 태평이와 XX어린이집에 계속 있을 경우와 OO어린이집으로 옮길 경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다. 태평이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고 어느 날부터는 "OO어린이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말까지 하며 XX어린이집에 가기를 거부했다.
이미 마음을 굳힌듯한 태평이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엄마인 내가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아이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태평이보다 나약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동시에 어른스러운 태평이의 태도에 이전 두 어린이집에 적응할 당시 눈물 콧물 다 쏟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몇 년 사이 이렇게 컸다는 사실에 놀라운 건 물론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 태평이의 어린이집을 옮기는데 합의했다.
△XX어린이집에서의 마지막 날 친구들 선생님과 작별을 하고 돌아오는 길 , 떨어지는 낙엽은 그렇지 않아도 시린 내 가슴을 더 시리게 했다.
드디어 XX어린이집 친구들 선생님들과의 마지막 날, 태평이는 약간은 꿈인 듯 생시인 듯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러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눈물을 보이자 태평이는 그제서야 이별의 현실을 자각한 눈치였다.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쉽게 어린이집에서 발길을 떼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년간 아이를 엄마인 나보다 더 살갑게 챙겨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가 하루의 반 이상의 시간을 보냈던 어쩌면 집보다 더 애틋한 이 공간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교실을 나와 놀이터를 지나 주차장까지, 보통 때는 1분이면 뛰어 나올 이 짧은 거리를 15분에 걸쳐 터벅 터벅 걸어 나왔다. 어린이집 곳곳에서 4살, 5살, 6살의 태평이가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때마침 길가에 떨어진 낙엽은 내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스펙터클한 하루하루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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