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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노트 Feb 02. 2018

유급휴가만 5주..한국에선 꿈도 못 꿀 스위스 휴가법

#1년마다 찾는 한국에서 늘 겪는 장면 하나.


어?? 네 남편도 왔어?? 일 안 해도 돼? 언제 가는데??
휴가가 도대체 며칠이야????


우리 가족에게 한국 방문은 대략 2, 3주 정도 머물다 가는 연중행사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혼자 또는 아이들만 데리고 올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저 질문은 결혼 후 지금까지 매년 한국 방문 때마다 듣고 있다. 이 기회에 나처럼 국제결혼 후 한국을 찾는 가족들에게 미리 질문 방지권을 드려볼까 한다. 지난 글인 상반기 계획(☞스위스 새댁의 '색다른' 1년 계획 들어볼래?)에 이어지는 하반기 계획이기도 하다.

시이모님이 사시는 남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지역에서 가까운 항구 까씨스(Cassis). 둘째 낳고 늦은 여름휴가 겸 이모님댁 방문 겸 아기와 처음으로 다녀온 곳이다.

스위스는 각 칸톤(Kanton, 스위스의 가장 큰 지방 자치 단체로 미국의 주 개념과 같다)마다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7월 초부터 8월 첫째 주까지 방학을 한다. 부활절에 이어 두 번째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휴가이자 전형적인 바캉스 시즌이다. 앞서 말한 부활절 휴가로 1~2주 정도를 사용했다면 이때 남은 2주를 사용한다. 그러고도 휴가가 남았냐고? 그렇다, 총 5주 법정 휴가 되시겠다. 3주 휴가를 내고 주말을 모두 끼워 거의 한 달 간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사람도 많다.


스위스 사람들의 휴가를 관찰한 결과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를 다녀오는 사람들이다. 워낙 산과 하이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세계의 명산, 예를 들면 북미의 로키산맥이나 알래스카에 가서 캠핑 겸 산행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두 번째로는 국내 휴가로써 알프스 지역에서 하이킹을 하고 시원한 휴가를 즐기다 오는 것이다. 물가가 사악하기로 유명한 스위스다 보니 호텔이나 식당 등의 이용료가 비싸 사람들은 주로 아파트형 별장을 빌려 숙식을 해결한다. 이런 경우 국내와 해외 휴가의 비용 차이가 크지 않다.


세 번째는 바로 몇 십 년 전부터 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전형적인 여름휴가다. 즉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남유럽의 바닷가에서 쉬다 오는 것. 유럽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향하는 전통적인 휴가지는 가깝게는 이탈리아, 남프랑스나 조금 더 가서 스페인 혹은 차를 배에 싣고 가는 그리스의 섬과 해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독일 고속열차 ICE나 프랑스 고속열차 TGV 같은 국경 통과 열차들은 객실 출입구가 휴가객들의 트렁크로 꽉 차 설 곳조차 없을 정도다. 무거운 트렁크를 이고 지고 기차에 타는 것부터 기싸움의 시작이다. 고속도로는 당연히 몸살이다. 마치 한국의 설이나 추석 명절 때 서울에서 빠져나온 차들이 대부분 남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유럽의 고속도로도 같은 방향으로 꽉 막힌다. 스위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므로 여름휴가 기간에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인접국에서 오는 차량들이 많이 거쳐간다.

해변의 기암절벽을 보러 탄 배에서 항구를 구경하는 큰 아이.

유럽의 휴가지 하니 생각나는 대목 하나.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 방송 초기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와 독일 대표 다니엘이 유럽의 휴가지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발군의 한국말 실력을 갖춘 다니엘은 유럽연합(EU) 강국인 독일을 대표해 늘 차분하게 토론을 이끌어왔지만 그날 그 주제만은 이미 정해진 승부였던 터라 알베르토의 공격에 반박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러다 알베르토의 '독일 여자들은 멋진 이탈리아 남자들 만나러 휴가 와요' 이 한 마디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혹시나 이 장면을 본 유럽 거주자들은 그 상황에 공감하면서 정말 큰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렇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마음껏 하고 일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즐길 곳은 많다 해도 가족을 이끌고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운전해 가며 갈 만 한 곳은 이탈리아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내가 휴가를 온 것인지 인접국에 그냥 온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 남부 이탈리아는 유럽의 모든 언어를 들을 수 있으므로 예외.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는 영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할 정도다. 포르투갈의 알가르베 지역에서는 우아한 영국 영어 청취가 가능하다. 작년 혹은 재작년에 간 휴가지 또 간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나라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휴가지에 대한 얘기는 스위스 사람들의 파티 단골 화제다. 시부모님만 해도 여름에 늘 가는 알프스 산속 별장에서 시원한 휴가를 즐기시는데 남편이 아기일 때부터 가셨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 가족도 매년 며칠씩은 그곳으로 휴가를 간다. 작년 여름에는 갓 태어난 둘째 때문에 남편과 큰 아이만 보냈는데 올해에는 처음으로 네 가족이 다녀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니 일주일 안에 '영 프 스 이' 이렇게 기본 4개국을 도는 아시아 관광객들의 휴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최근에는 몇몇 지인과 건너건너 지인들이 가족을 이끌고 호주로 한 달 간 캠핑카 여행을 겸한 휴가를 보내고 온 이야기에 솔깃했다. 호주는 뉴질랜드와 함께 유럽인들에게 제일 먼 곳 중 하나여서 좀 각별한 것 같다.


여름휴가 얘기는 유럽인이라면 누구나 풀어놓을 게 많다. 사실 우리 가족은 여름에 휴가를 떠나본 적이 없다. 성수기는 어디에서나 성수기인 법, 아이 취학 전까지는 비수기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늘 휴가 기간에 도시를 지켰다. 널찍한 버스를 타고 텅 빈 시내에 나가 여유롭게 유모차를 밀며 돌아다니는 것은 어딘가 조금은 어색한 이 기간만의 즐거움이다. 올해에도 그 즐거움은 이어질 듯하다.

두 달 된 둘째는 유모차에 눕히고 잘 다녔다. 가족여행이 많은 유럽이라 어디든 유모차 통행이 가능하다. 좀 불편은 하지만..

이제 글 첫머리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유럽 국제결혼 커플의 남편들이 그렇게 자주? 한국에 오는 것 같은 이유는 이 5주 법정휴가를 쪼개고 나눠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집의 경우 남편이 초과근무도 하고 가끔 주말근무도 하므로 그 시간을 다 써야 하는 의무가 있다.


곧 연중 휴가 계획을 제출할 때라 요즘 나와 남편의 대화 주제는 단연 어린아이 둘과 갈 만한 곳이 어디인지, 자금 사정에 부합할 것인지에 대해서다. 한국에 더 오래 있고는 싶으나 휴가를 한 번에 써 버리기에는 유럽에 남은 시간이 또 많다. 그래서 부활절 휴가 한 번과 한국 한 번, 그 사이에 주말을 껴서 짧게 다녀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연례 휴가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주말을 끼워 일주일 휴가를 한 번 내기도 쉽지 않은 것이 한국의 사정인 지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하는 휴가 얘기는 그렇게, 선뜻 꺼내지 않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바젤=김선진 객원기자  reunite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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