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미세먼지가 어때?"
요즘 태평이는 눈뜨자마자 이렇게 오늘의 미세먼지 수치부터 묻는다. 결과에 따라 아이의 기분도 달라진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어린이집에서 바깥 놀이를 못하고 하원 후에 잠깐 들르는 놀이터에도 갈 수 없다. 그러면 태평이 기분도 울적해진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긋지긋한 겨울을 겨우 떠나보냈더니 이번엔 '미세먼지'가 태평이의 바깥 놀이 가는 길을 막아선 거다.
미세먼지가 달갑지 않은 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쌓여 있는 에너지를 기준점 이하까지 방출해 줘야 한 두 끼는 굶은 듯 잘 먹고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든다. 그래야 잘 크고 아프지도 않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반대로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날엔? 그야말로 'OMG(오 마이 갓)'다. 저녁도 영 신통치 않게 먹고 잠들 때도 그야말로 진상 중의 상 진상이 된다. 누웠다가도 일어나길 몇 번, 해달라는 건 어찌나 많은지.. 속으로 몇 번을 '욱. 욱'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솟구치는 '욱'을 꾸역꾸역 눌러 담으며 태평이를 다독인다.
'하다 하다 미세먼지까지 내 육아에 걸림돌이 될 줄이야 ㅡㅡ;;'(아이를 다독이는 건지 나를 다독이는 건지...)
집에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아파트 생활을 하는 이상 '층간 소음'을 신경 쓰다 보면 에너지 방출은 쉽지 않다.
사실 뭐 이 정도는 엄마가 된 이상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를 아프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는 건 정말이지 속상하다. 태평이를 낳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하나의 기도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다.
그런데 이건 뭐 기본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시작된 태평이의 충혈된 눈과 가래 낀 목소리는 아직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된 아이가 어른이 돼 어떤 질환을 앓을지 예측할 수조차 없다는 건 나를 더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나마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유아기마저도 이렇게 미세먼지 때문에 반강제로 감금 돼 있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학원 뺑뺑이를 돌게 될 게 뻔하다. 갑자기 태평이가 안쓰러워진다.
"태평아, 오늘은 피아노 가지 말고 놀이터로 가자!"
"정말?? 오예!!!! 놀이터에서 논다! 오예!!!!!!!!!!"
오랜만에 놀이터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문득 작년 날 좋은 그때 하원 후 2시간은 거뜬히 놀이터에서 놀던 태평이를 보며 혼자 심드렁하게 '놀이터 신세 좀 면하고 싶다'고 내뱉었던 것이 마음이 쓰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기가 조금이라도 더 좋을 때 더 많이 놀게 할걸.. 그래, 오늘은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놀게 내버려 둬야겠다. 언제 또다시 올지 모르는 미세먼지 '좋음'이니까.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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