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논길을 따라 걷다 만난 정자에 누워 뜨거운 햇볕을 잠시 피해 갔던 어린 시절 추억.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예쁜 풍경에 한참을 넋 놓고 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시간이 흘러 이젠 놀러 갈 수 있는 할머니 댁도, 시골도 없는 게 아쉽기만 하네요.
도심에 살고 있는 저희 아이들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게 바로 이런 농촌 체험인데요. 이런 농촌 체험을 온 가족이 해볼 수 있어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핫' 하다는 양평 '외갓집 체험 마을'에 올리브노트가 직접 다녀왔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을 토대로 한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은 참고하세요.)
외갓집 체험 마을에 도착하니 초입부터 체험이 가능한 업체들이 줄지어 보입니다. 대부분 당일치기 체험이 가능하고 1박2일, 2박3일도 가능합니다. 저는 당일체험을 신청했는데요. 업체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방문한 곳은 1인당 2만원대 후반의 비용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물=여벌옷, 수건, 아쿠아슈즈, 물, 간식, 우비(우천 시)
◇체험 프로그램 ★★★★☆
당일 체험으론 먹거리 체험 2가지, 생태체험 4가지 등 총 6가지 체험이 진행됩니다. 먼저 풀 피리 체험을 시작했는데 정말 길거리에 피어있는 민들레 줄기를 잘라서 피리를 만드는 모습에 아이들이 1차 충격. 민들레 줄기 끝부분을 입으로 '앙' 씹어야 한다는 데에 2차 충격.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풀 피리에 3차 충격. (ㅋㅋ)
길을 걷다 쑥 캐기 체험도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뽑아서 아기 쑥 밖에 발견을 못했습니다. (-_-;) 첫째 아이가 쑥 떡을 만들겠다며 열정적으로 쑥을 캤는데 결국 시간이 없어 떡은 못 만들었네요.
한참 논두렁을 걷다 보니 모내기 체험을 하는 논이 등장했습니다. 아쿠아슈즈를 신은 아이들은 녹진한 논 진흙을 보곤 "저길 그냥 들어가?"라고 묻더니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손사래 쳤는데요. 거머리나 벌레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가까스로 논에 들어간 아이들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벼 모종 심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벼를 심고 논을 빠져나온 아이들은 수로에서 발을 깨끗이 씻은 뒤 농가에서 소 구경을 하고 나오다 손가락만한 송충이를 발견하곤 삼십육계 줄행랑을..
오후 일정은 물놀이 3총사(송어 잡이, 뗏목 타기, 워터슬라이드)로 시작했습니다. 여러 구역으로 나뉜 냇가에 들어가니 체험 지도 선생님이 송어 몇 마리를 물에 풉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송어잡이가 시작되는데요. 아빠들이 송어 몰이를 시작하고 준비하고 있던 아이들이 송어를 맨손으로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이어진 뗏목 타기에서 다른 가족의 아빠가 대표해 아이들이 타고 있는 뗏목을 이리저리 끌며 놀아줬는데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했습니다. 저희 집은 아이들의 여벌 옷만 챙겨가 낭패를 봤는데 부모님도 함께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많으므로 어른들의 여벌 옷도 꼭 챙겨가시길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론 워터슬라이드는 별점을 단 한 개도 주고 싶지 않은 체험입니다. 물이 쏟아지는 미끄럼틀을 타고 아이들이 미끄러져 내려와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전혀 미끄러지지 않더군요. 심지어 아이들이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있던 도중 기계가 멈춰 기구에 바람이 빠져버린 아찔한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깡통 차량만 타보면 끝날 일정이었는데 갑작스런 문제 발생으로 30분간 대기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행사 인솔 부분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어설픈 관리 시스템으로 인해 어떠한 언급도 듣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는데요. 저희 팀에 있던 한 가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에 돌아갔을 정도였죠.
문제 제기 후에야 다시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오랜 시간 대기를 하게 한 것이 죄송하다며 딸기 농장을 추가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신나게 깡통 차를 타고 도착한 딸기 농장. 딸기를 그냥 따 먹어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가장 큰 왕 딸기'를 찾겠다며 딸기밭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나중에 돌아와 물어보니 딸기 농장과 깡통 차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한 공간에서 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도착 당시 들었던 이날의 계획과 달라지는 프로그램 운영은 오히려 대기시간과 무료함을 늘리고 '다음엔 뭘 하는 거지'란 불안감을 안겨 좋지 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식사 및 간식 ★☆☆☆☆
식사는 어땠을까요. 대부분의 외갓집 체험 마을 비용에는 점심식사 비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시골식 식사를 제공한다고 알고 방문했기에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그런 밥상을 기대했는데요. 기대와 다른 뷔페식 식사에 반찬 역시 시골 밥상과는 거리가 먼 반찬에 조금 실망했습니다. 모내기를 마치고 점심을 먹었던 터라 아이들은 '우리 쌀을 남겨선 안 된다'며 아주 열심히 먹더군요.
간식으론 야채전과 송어회가 나왔습니다. 화로에 직접 부쳐먹는 야채전(야채가 별로 들어가진 않았지만)과 신선한 송어회는 아주 꿀맛이었는데요. 음료로 막걸리를 주는데 대부분 직접 운전을 하고 온 가족들이 많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막걸리보단 다른 음료를 제공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도 음료도 없어 결국 마트를 찾아 필요한 물품을 사와야 했습니다.
◇행사 인솔 및 안전 지도 ★★☆☆☆
이런 체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경험이 많은 인솔자가 있는지와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입니다. 제가 갔던 곳은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이 인솔자로 나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모든 인솔자가 그렇진 않겠지만 몇몇은 경험이 짧아 오히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체험 프로그램 순서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않은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냇가에서 뗏목 타기를 할 땐 아예 인솔자들이 서로 물에 들어가길 꺼려 해 부모들만 들어가 체험하기도 했죠. 물놀이를 앞두고 몇몇 인솔자들이 긴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매우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물놀이가 끝난 후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샤워실을 이용했습니다. 여자, 남자 탈의실이 나눠져 있긴 했지만,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인데다 상주하는 관리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우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프로그램 자체는 다양하고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것이 많았지만 그 외에 정작 중요한 안전 부분이 제대로 갖춰진 것 같지 않아 아쉬움이 크게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해당 기사는 관련 업체로부터 어떤 대가나 혜택을 받지 않고 기자 본인이 직접 비용을 지불한 후 작성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limjh@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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