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언니 육아일기
나: "음.. 그것도 좋은데..색을 좀 맞추면 더 예쁘지 않을까?"
태평이: "예쁜데 왜?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게 아니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나: "그.. 그..래 ^^;; (틀린 말은 아니니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나는 태평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태평이와 함께 '시밀러룩(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입는 커플룩)'을 입고 다니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지난 5년간 그럴 수 있었던 시간은 1년 남짓. 이제 태평이의 취향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오면서 내 소박한 꿈은 완벽하게 접어야 함을 깨닫고 있다.
태평이가 두 돌이 되기 전엔 '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핑크~핑크한 옷을 입혔다. 태평이는 100일이 지나면서 포동포동 살이 오르기 시작했고 머리숱도 많지 않아 내가 봐도 아들인지 딸인지 구분이 잘 안됐다. 그러다 보니 늘 밖에 나가면 "아들이죠?"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왜 그 많은 선배맘들이 동양인 여자아이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핑크색에 레이스 옷을 꾸역꾸역 입히는지 깨달았다. 예쁜 내 딸한테 자꾸 아들이라고 하니 '딸'이라는 걸 단번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한 거였다. 그렇게 태평이를 낳기 전 핑크 레이스 옷은 절대 입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뒤를 밟았다. (이래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하기 전에 '절대'라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ㅎㅎ)
하지만 태평이와의 시밀러룩에 대한 내 바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태평이가 조금 크면 가능할 거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태평이는 두 돌이 지나면서 마치 미쉐린 타이어 로고처럼 보이게 했던 살이 빠지고 키가 크면서 꽤나 여자아이 티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끌어 모아도 한 줌도 되지 않았던 머리숱이 풍성해진 게 '여성미'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그렇게 1년 정도 태평이에게 내가 입히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히며 한창 딸 키우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입에는 늘 "그래 이런 게 딸 키우는 재미지~"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5살에 접어들면서 '내가 내가' 병에 걸린 태평이는 뭐든 자신이 하려고 했다. 옷 입기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뭐든 스스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에 태평이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태평이가 골라 입고 나온 옷을 보면 이대로 어린이집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우선 입은 옷에 세상에 있는 모든 색과 문양이 다 들어 있다. 그리고 겨울 코트에 여름 원피스를 입는 등 한 번에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 옷을 죄다 입고 있다. 이에 더해 머리띠에 목걸이에 팔찌까지 '투 머치(too much)' 패션의 선두주자가 따로 없다! (ㅜㅜ) 이 패션은 대체 어디서 얻은 영감일까?
무난한 옷으로 바꿔 입히려고 몇 번 타협을 시도하지만 '내가 내가' 병에 걸린 태평이에게 먹힐 리가 없다. 특히 평소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괜찮다'고 아이에게 교육해 왔던 터라 옷으로 트집을 잡을 수는 더더욱 없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멋진 패션, 예쁜 패션'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경험을 통해 주입된 획일화된 개념이 아닌가. 그 획일화된 개념이 아직 머릿속에 자리 잡히지 않은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에겐 이게 최선이고 가장 예쁠 수 있다.
지금의 옷 선택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나와 태평이는 부딪힐 거다. 그때마다 나는 세상을 먼저 살았다는 이유로,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태평이의 선택에 도움(참견?)을 주려고 할게 뻔하다. 그 도움이 아이에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도록 적정한 선을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그랬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 스스로 걷고 혼자 밥을 먹으면서 계속 독립해 나가는 거라고. 그 독립을 인정하고 격려해 줄 때 아이가 주체적인 삶을 살 거라고 말이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판단해 골라 입은 옷을 입고 다니다 보면 태평이 스스로 느끼고 알게 될거다. 어떤 상황에 어떤 옷을 입어야 하며 어떤 스타일의 옷이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지 말이다.
'그래, 쉽지 않겠지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너의 취향을 인정하도록 노력할게'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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