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첫 응급실, 내 가슴은 찢어졌다

옆집언니 육아일기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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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태평이가 열이 나는데 어서 오셔서 병원에 데리고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복직한지 일주일 남짓, 태평이가 어린이집에 간 지 한 달 정도 되던 어느 날 오후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복직 후 아직 업무에 적응이 안 된 상태인데다 부서원들과의 관계도 조심스러운 상황. 그런데 갑자기 업무 중에 아이가 아프니 당장 오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가 왔으니 뭐부터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급한 일을 정리한 뒤 상사에게 아이가 아파 급하게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보고했다.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예상 밖의 배려 섞인 말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아마도 태평이가 생후 14개월 동안 열 한번 나지 않고 건강했던 아이였던 터라 어떤 일이 불어닥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날 이후부터 전화기에 '어린이집'이 뜰 때마다 내 심장은 63빌딩 꼭대기에서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 태평이를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아이 얼굴의 반 정도가 빨간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담임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엄마가 놀라면 아이는 더 놀라니 차분하세요"라며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계속 되새기며 스스로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나는 태평이 엄마다. 침착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와 함께 근처 병원을 찾았다. 아이 얼굴을 본 간호사 선생님은 먼저 진료할 수 있게 주위 엄마들에게 양해를 구해주셨다. 그렇게 바로 진료실로 들어가자마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를 전해 듣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홍역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모르니 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 보세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홍역이라니! 홍역은 옛날에나 있었던 병 아닌가? 게다가 고작 15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응급실이라니!!'


내 머릿속은 응급실과 홍역이라는 단어로 가득 찼고 동시에 눈동자와 다리, 손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태평이가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 정신을 챙겼다.


운전대를 잡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남편과 회사에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번호를 누르는데 손가락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 길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는 큰일이 없으니 병원에 잘 다녀오라는 답을 받았고, 남편은 일을 빨리 끝내고 오겠다고 했다.

2397_6665_1248.jpg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소아 응급센터 간판'. 하지만 그 뒤로도 이 간판을 몇 번 더 봐야 했다.

마음속으로는 남편이 오기 전까지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계속하면서 입으로는 아픈 아이를 달래며 대학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도착한 내 생의 첫 대학병원 응급실은 너무 크고 복잡했다. 빨리 진료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한데 주차장은 보이지 않아 헤맸다. 다행히 주차요원이 다가와 뒷좌석의 아이를 보더니 응급실 바로 앞에 주차를 하라고 지시하며 빨리 들어가 보라고 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뛰어 들어가자마자 또다시 내 정신은 혼미해졌다. 아파서 우는 아이들의 소리에 귓전이 흔들렸고,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겨우겨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을 되새기며 꾹꾹 집어삼켰다.


접수를 하고 한참을 기다리자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은 태평이 얼굴을 보고 나선 침착하게 진찰하기 시작했다.


"귀 뒷부분부터 빨갛게 올라오는 반점을 봤을 때 홍역이 의심됩니다. 약간의 변종된 홍역이라 모든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커 보입니다. 요즘 해외여행을 많이 갔다 오면서 국내에서 홍역 같은 질병들이 다시 발생하고 있어요. 예방접종을 맞아도 변종된 홍역에 걸릴 수 있고 가볍게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검사를 해봐야겠네요"


홍역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라 유아 격리실로 안내를 받았다.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와중에 남편이 도착했다. 남편을 보자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지만 바로 옆에서 태평이가 보고 있어 다시 한 번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뒤이어 간호사가 주사기와 작은 시험관 3개를 들고 들어왔다. "지금부터 채혈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발등 혈관에서 피를 뽑아요. 또 한번에 피를 쭉 뽑을 수 없어서 주삿바늘을 꼽아 두고 떨어지는 피를 모으는 방식으로 할 거예요. 아이가 아파서 몸을 흔들면 다시 해야 할 수 있으니 꽉 잡아주세요"


아이 몸에서 피를 뽑는 것도 기절할 노릇인데 통증이 심한 부위인 발등에, 그것도 주삿바늘을 꽂아두고 떨어지는 핏방울을 모은다니. 숨이 막혔다. 순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야 하나 고민됐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편 역시 같은 생각인듯했지만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2397_6667_234.jpg 응급실에 다녀온 날 밤 퉁퉁 부어올랐는데도 한 손에 들어오는 아이의 작디작은 발을 어루만지며 나는 또 한 번 울었다.

채혈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태평이는 자지러지게 울어 이내 목이 쉬었고 초인과 같은 힘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다잡았던 마음이 순간 무너져내렸다. 두 팔로 태평이 다리와 팔 한쪽을 잡은 채 침대에 얼굴을 묻고 나도 울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15분가량 지나 나도 남편도 태평이도 모두 지쳐갈 때쯤 간호사는 채혈이 끝났다며 아이를 안정시킨 뒤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미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어린이집 연락을 받고 소아과를 거쳐 응급실에 있는 몇 시간 동안 족히 20년은 늙은 것 같았다.


겨우 아이를 달래 집으로 돌아온 뒤 지쳐 쓰러져 잠든 아이를 침대에 내려놨다. 퉁퉁 부어올랐는데도 한 손에 감싸지는 작디작은 아이의 발을 어루만지며 나는 또 한 번 울었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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