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외계인

옆집언니 육아일기

by 올리브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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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나가서 씽씽이 탈래! 씽씽이! 씽씽이~ 씽씽이 제발~~~~~~"


태어나서 가장 더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올여름 어느 날 밤. 슬슬 태평이를 재울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태평이가 씽씽이를 타겠다며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소 태평이가 잠드는 시간은 밤 9시. 현재 시간은 8시40분. 눈으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머릿속으론 빠르게 계산을 시작했다. 태평이의 뜻대로 폭염을 뚫고 밖에 나가 씽씽이를 타고 온다면? 옷 갈아입고 준비하는데 20분, 공원 한 바퀴 돌고 오는데 1시간, 샤워와 정리에 20분. 도합 100분 소요. 그러면 태평이가 잠드는 시간은 대략 10시30분이 될테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면 태평이는 분명 잠투정을 부릴게 뻔하다. 그러다 내가 참지 못하고 '욱!' 하면 결국 서로 눈물을 훔치며 잠들어야 하는 새드엔딩이 될 수 있다. (해줄 거 기분 좋게 다~ 해주고 마지막에 욱! 하면 정말 속상하다!!!!!!!!)


결국 씽씽이는 타지 않기로 했다. 대신 태평이가 잠들기 전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을 즐겁게 해줄 거리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순간, 어느 글에서 '5~7세 아이들은 엄마가 외계인이라고 하면 믿는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나는 침대에 누워 무드등만 켜 놓은 상태에서 분위기를 한껏 잡고 태평이에게 한 마디 했다.


"태평아 엄마가 비밀 하나 얘기해 줄까?"


아이는 나의 미끼를 덥석 물었다. 나는 심각하지만 우울하진 않은 표정으로 분위기를 조금 더 잡고 "사실은.. 엄마.. 화성에서 왔어"라고 했다.


순간 태평이는 눈을 희번득이며 "정말?? 화성??? 진짜야??"라며 내가 한 말이 사실인지 계속해서 되물었다.

나는 이제서야 진실을 털어놔 마음이 좀 편하다는 표정을 하며 "응. 그러니까 태평이는 지구인 아빠랑 외계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거지"라고 말했다.


태평이는 내가 화성인이라는 사실(?)에 살짝 놀라면서도 그보다 신기한 게 더 많은 듯했다. 내 몸과 얼굴을 만지면서 커진 눈은 작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370_6396_1758.jpg 엄마 말은 뭐든 믿고 보는 태평이. 이럴 날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든다.

아이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장난기가 조금 더 발동했다. 나는 "요즘 자꾸 화성에서 오라고 해서 고민이네.."라고 태평이의 반응을 슬쩍 떠봤다. 순간 아이의 얼굴빛이 사색으로 변하더니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안돼 엄마. 가지 마. 절대 가지 마. 안돼"


나는 장난을 그만 둘까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조금만 더 해보기로 했다. 나는 "그럼. 엄마는 태평이 혼자 두고는 절대 안가. 그래서 말인데 태평이 엄마랑 화성으로 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는 답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평이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겨갔다.


"그럼 아빠는 어떡해? 아빠는 지구인이니까 같이 갈 수 없는 거 아니야? 그럼 아빠가 많이 슬퍼할 텐데.. 어쩌지? 엄마가 그냥 안 가면 안 돼? 그리고 아빠한테 얘기해서 방법을 찾아보자"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더 이상의 장난은 안되겠다 싶어서 대충 이쯤에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일단 아빠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태평이랑 엄마만의 비밀로 간직하자. 비밀이 알려지면 엄마는 화성으로 가야 할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아이에게 장난쳤다고 한 마디 할 게 뻔했다)


태평이는 가족끼리 비밀이 있으면 안 되지만 이번엔 중요한 일인 만큼 약속을 지키겠다며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결심을 보여줬다. 그렇게 태평이와 나 우리 둘만의 비밀이 생겼다.


태평이는 그날 밤 나를 꼭 안고 잠들며 귓속말로 "엄마 절대 화성으로 가면 안 돼. 알았지?"라고 속삭였다.

2370_6395_1640.jpg 나로 인해 너의 세상이 항상 '맑음'이길..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이는 이미 가족의 의미뿐만 아니라 가족의 소중함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의 장난으로 아이가 엄마가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 걱정은 다음날 출근해 일을 하는 중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나의 장난은 도를 넘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이의 정서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안함' 아닌가. 그것도 부모의 부재에 대한 불안함. 내가 그걸 건드렸다는 걸 깨닫고 아차 싶었다.


그날 밤 나는 한약 소화제 한 알을 꺼내놓고 말했다. "태평아. 이 약을 먹으면 화성으로 앞으로는 못 돌아가. 엄마 이 약 먹고 그냥 태평이랑 아빠랑 지구에서 행복하게 살려고. 괜찮겠지?"


태평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약을 내 입에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 이제 우리 지구에서 엄마랑 아빠랑 나랑 냥냥이(고양이)랑 행복하게 살자~~"


나의 장난으로 알게 된 아이의 진심. 덕분에 나는 가끔 지치고 힘들더라도 다시 웃는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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