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사립유치원 비리근절 대책'이 공개됐다. 국공립유치원 확충 목표를 조기 달성하기 위해 내년에 예정한 국공립유치원 신·증설 학급 수를 두 배로 늘리고 사립유치원의 집단 휴업을 엄중제재하기 위해 유아교육법을 개정하는 등의 다양한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지켜본 학부모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뜨뜻미지근하다. 예상보다 제재 강도가 약하고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당정이 힘을 모아 사립유치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을 취한 것에 큰 의미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 유은혜(오른쪽)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출처=교육부 홈페이지)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책 어떤 내용 담겼나?
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관련 대책을 확정, 추진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방안이 총망라한 가운데 △국공립유치원 확충과 △집단 휴업 엄중제재가 핵심 포인트다.
당정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공립 유치원 40% 조기 달성'을 위해 당초 내년에 500개 학급을 신·증설하려던 목표를 그 두 배 수준인 1000학급으로 늘려 잡았다. 교육부는 유치원 신설에 들어가는 자금이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내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5000억원)으로 충당하고 부족하면 예비비를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사립유치원의 집단 휴업과 원아 모집 중지 등의 단체 행동 움직임과 관련한 대책도 마련됐다. 당정은 유치원이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하면 교육감이 운영 개시를 명령하고 이를 거부하면 학급정원 감축과 벌칙을 부여하는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현행 유아교육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개별 유치원이 모집을 중지할 경우 등에 대해선 행정처분을 포함해 엄정 대응하는데 합의했다.
또 회계 비리를 막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모든 사립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적용한다. 내년 3월 200명 이상 대형 사립유치원과 일부 희망 사립 유치원에 에듀파인 우선 도입하고 나머지 사립유치원은 예결산서 공시 등 정보공시 지침을 강화해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현재 유아교육법상 미비한 설립자 결격사유를 새로 만들고 유치원 원장자격 인정기준을 강화하며 시·도교육청의 원장자격검정 심의도 강화할 방침이다. 앞으로 신설되는 유치원은 비영리법인 또는 학교법인만이 설립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예상했던 수준에 구체적 방안 제시 않아 실망"
이번 대책에 대해 학부모들은 대체로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상했던 수준의 대책이 대부분이며 너무 빠른 시일에 대처 방안을 내놓으려다 보니 세심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 A 씨는 "비리 유치원 공개 사태 이후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보이길래 뭔가 대단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하지만 실제로 보니 이미 예상됐던 수준에 그쳐 실망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당장 11월부터 유치원 전쟁이 또 시작된다"며 "오늘 나온 대책은 그 효과가 1~2년 뒤에나 나오는 것이니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 B 씨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번 대책 발표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역시나 기대를 한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과연 이 정도의 대책으로 만연한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이자 유치원 교사인 C 씨는 "앞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세워 나가겠지만 너무 급조한 티가 난다"며 "재원이야 세금 등으로 충당한다고 해도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을 갖춘 교사를 어떻게 확보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회 통과 가능성 높아졌다는 것에 의미"
반면 당정이 빠르게 힘을 합쳐 유치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눈에 띄게 새로운 대책은 없지만 비리 유치원 근절을 요구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 가운데 당정이 주요 안건에 합의했고, 야당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대책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학부모이자 법조계에 종사하는 D 씨는 "당정 합의로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 의미를 둬야 한다"며 "과거엔 파워가 막강한 유치원 원장들 눈치를 보느라 국회를 통과하는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E 씨는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 휴원할까 봐 걱정이 컸는데 당정이 재빨리 행동에 나서면서 휴원이 철회됐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유치원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아나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임성영 기자 rossa83041@oliveno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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