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키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노트 Dec 01. 2017

왜 힘드냐고? 들어봐 '6세 광이+4세 나니'

'6세 광이+4세 나니' 형제와의 하루

*이번 사연은 서울 구로구에서 6세, 4세 형제를 키우는 이지연 님이 보내준 사연입니다.


딸 하나 친구: "애가 너무 잠만 자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축복이래. 밤에도 통잠 자~"
나: "통잠이 뭔데? 먹는 거가? 그때 우리 애들은 밤마다 돌림노래했다. 하나가 울면서 깨서 겨우 재우고 나면 또 하나가 깨서 울고. 제대로 잔 적이 없다"
딸 하나 친구: "야, 너는 왜 매일 힘들기만 하냐?"


헐. 어이가 없다. 그래 내가 왜 힘든지 한번 얘기해 볼까? (참고로 나는 현재 여섯 살, 네 살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첫째의 애칭은 '광이', 둘째의 애칭은 '나니'다. 두 아드님이 지금보다 어릴 때 도저히 통제가 안돼 미치광이와 망나니 같다 해서 남편과 함께 지어준 별명이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데 이 녀석들의 상태를 봐선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침 등원시간에 열이 가장 심하게 뻗친다. 특히 월요일 아침이 가장 두렵다. 애 둘 낳아서 키우기 전까진 회사원만 월요병이 있는지 알았다. 전업주부도 똑같더라.


두 녀석은 주말 내내 낮잠도 안 자고 밤늦게까지 눈이 벌게지도록 버티시더니 월요일 아침이면 아무리 일어나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더 이불속으로 파고드신다. 근데 나도 이제 아들 엄마 6년 차라 나름 터득한 비법이 있지. TV 소리를 최대로 해서 EBS를 튼다. 타요 친구, 소방차 프랭크가 긴급하게 불 끄는 소리에 두 아드님 눈이 번쩍번쩍 떠져요. 엄마 얘기에는 귀를 닫고 계시더니 만화 소리에는 어찌나 바로바로 반응하시는지...;;;;;;

겨우 일어나시면 마의 식사 시간이 이어진다. 두 아드님은 급한 것이 없다. 밥을 입에 넣어드리고 꼭 "씹어라"고 말해야 씹으신다.

두살 터울이지만 개월 수로는 연년생이나 다름 없는 형제. 특히 둘째는 또래보다 덩치가 커 거의 6세 아들 둘을 키우는 느낌이다.(사진=독자 이지연 님 제공)

겨우겨우 밥을 다 드시면 이제 옷 입기가 남아 있다. 첫째 아드님 옷 입혀드리는 사이 둘째 아드님이 장난감 방으로 들어가신다. 다시 둘째 아드님을 끌고 나와 옷 입히는 사이 첫째 아드님이 옷 투정을 하기 시작하신다. 어르고 달래서 그냥 입혀 보내려 하지만 당연히 협상 결렬. 하는 수 없이 다른 여러 옷들을 가지고 와서 이래저래 코디한 다음 승낙 받은 옷으로 입혀 드리고 신발장으로 향한다.


겨우 신발장에 다다랐는데 문자가 온다. 언제쯤 원에 도착하냐는 두 아드님의 담임 선생님 문자 메시지. 조급했던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세상 어느 엄마도 애가 지각하는 건 싫다. 시간은 촉박한데 협조가 안 되는 두 아드님이 야속해서 속이 부글부글하지만 주말에 맘스쿨도 다녀오고 이제 화내지 않기로 했으니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화를 일단 꾹꾹 눌러 담는다.


이 문만 나가면 되는데 갑자기 둘째 아드님이 응가!!가 마렵단다. 왜 이 아이의 배변 시간은 꼭! 등원 시간인가!!! 화장실로 급히 데려갔다가 뒤처리를 하고 손 씻는 사이 신발장에서 난리가 나고 있다. 둘이 신발 하나를 두고 싸우고 있는거지. 왜 둘째는 자기 신발을 안 신고 형 걸 신겠다고 하는 걸까. 결국 길 잃은 내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야!!!" 소리를 지르며 마무리.


분명 아침에 일어났을 땐 맘스쿨에서 배운 '스킨십이 아이에게 미치는 정서적 영향'을 떠올리며 '모닝 뽀뽀와 굿바이 뽀뽀를 반드시 하고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하자'고 되뇌는데 항상, 늘, 이 자리. 신발장에서 폭발 한다. OTL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집은 이 지경이 된다.(사진=독자 이지연 님 제공)

겨우 애 둘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돌아오면 오전 10시쯤 다른 엄마들의 인스타에 올라오는 사진 한 장처럼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실 것 같지만. 난장판인 집을 봐라 커피가 눈에 들어오냐고요.


주섬주섬 아무리 해도 손에 익지도 않고 늘지도 않는 청소와 살림이라는 걸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래도 이건 뭐 혼자 하는 거니까 어떻게든 목표한 바에 따라 마무리를 한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작은 시곗바늘이 4에 가까이 갈수록 뭔가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발이 떨린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 돼 가는 거지.. 그래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은 흘러 흘러 4시가 되고 애 둘을 데리고 컴백홈. 후반전 시작~!


신발을 벗자마자 두 아드님은 싸우기 시작한다. 싸움의 원인은 항상 '순서'와 '소유'의 문제다. 둘째 아드님 왈 "내가 먼저 하려 그랬는데 형이 뺏어갔다"다. 첫째 아드님 왈 "내 것인데 동생이 가져갔다"다. 두 아드님에게 양보와 협상 따위는 없다. 달래보고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결국 또 혈압이 오르고 샤우팅으로 마무리. 맘스쿨에서 배운 대화기법은 또 적용 불가다.


한바탕 소란으로 휴전기를 맞은 사이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등 뒤에 털끝이 서는 이 싸늘한 느낌. 눈을 돌리면 '오 주여!' 둘째가 두루마리 휴지를 풀고 있다. 맘스쿨에서 배운 걸 한번이라도 성공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소리를 지르거나 말리러 쫓아가지 않고 '단호한 목소리로 나쁜 행동'이라고 얘기한다. 먹힐까? 절대. 네버. 둘째 아드님은 씩 웃으며 나와 눈을 맞춘 상태에서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결국 다 풀어재낀다.


화 낼 힘도 없다. 망연자실 걸어가 왜 그랬냐고 물어오니 아드님의 천진난만한 대답 "재미있어서요">< 할 말이 없다. 그래 태어난지 4년 밖에 안됐으니 처음 해본 두루마리 휴지 한 통 다 풀기가 재미있을 수도 있다.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놀이방을 두고 장간감을 쓸어 엄마아빠 침실에서 뒹굴고 있는 두 아드님.(사진=독자 이지연 님 제공)

저녁이 다 돼서 두 아드님을 식탁에 앉히고 식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첫째 아드님, 밥을 너무 천천히 드신다. 되새김질하시나?? 그래 그건 성향이니까. 패스. 그 순간 둘째 아드님 오늘도 정확하게 두 숟가락 뜨시자마자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신다. 달래고 협박도 하면서 앉혀 겨우겨우 먹이고 있는데 순간 첫째 아드님 식판이 눈에 들어온다. 와...반도 안 드셨다. 계속 되새김질 하나보다. 옛날 우리 아빠 같았으면 숟가락이 날아와도 벌써 날아왔을 순간이다. 그래도 나는 맘스쿨에서 바른 육아법에 대해 배운 엄마니까.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되새김질은 계속된다. 드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길고 긴 두 아드님의 저녁식사 시간을 마무리한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꾸역꾸역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남편이 온다. 어차피 그도 아들이다. 입양한 큰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맘 편하리. 두 아드님과 똑같이 입었던 옷을 던져 놓는다. 누구는 1시간30분 전에 했던 저녁 상 차리기를 두 번째 하고 있는데 남편은 컴퓨터에 빠져 있다. 밥 먹으라고 몇 번 소리치니 방에서 나온다. 식탁에 앉자마자 오늘도 시작이다. 반.찬.투.정. 순간 첫째 아드님인 줄. 그러다 뭘 가지러 간다. 이번엔 둘째 아드님이다. 두 아드님이 하는 행동을 고대~로 식탁 앞에서 한다.(누굴 탓하랴 모두 나의 선택인 것을 ㅜㅜ)


자책하는 순간 우당탕탕!!! 소리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늘구멍 틈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어질러진 우리 집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 혈압! 과연 여기가 아까 내가 4시간 넘게 치운 그 집인이란 말인가? 아니다. 여긴 흡사 자정을 넘어선 시각의 대학가 앞 술집거리다. 아드님 두 분의 뒤를 따라다니며 치우기 시작하는데 마구잡이로 어지르는 두 아드님에게서 남편의 모습이 '디졸브' 되면서 혈압 폭발.

4시간 공들여 치운 집을 이렇게 만드는데 삼십분도 안걸린다. 힘이 넘쳐나서 무거운 이불까지 다 끌고 나온다.(사진=독자 이지연 님 제공)

온몸이 녹초가 돼 설거지는 포기. 애들을 먼저 재워야겠단 생각에 침대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두 아드님은 전혀 잘 생각이 없다. 날씨가 추워서 놀이터를 못 갔더니 에너지를 방출하지 못했다. 12시도 넘길 기세다. 침대에서 레슬링을 시작한다. 그래도 에너지가 충만하시다.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에 베개싸움을 시도한다. 순간 뒤에서 성인 남성의 힘이 담긴 베개가 내 등짝을 스매싱한다. 남편인 줄 알고 주먹을 쥐고 뒤돌아섰는데 헉! 둘째다. 4세 남아에게서 어떻게 성인 남성의 힘이 느껴지는지.. 울분을 삭힌다.


이제 그만하고 자고 싶은데 두 아드님의 눈빛은 자기 1시간 전에 나온다는 그 '광이'와 '나니'의 눈빛으로 이미 변해 있으시다. 다치실까봐 겁날 정도로 여기저기 날뛰고 소리 지르신다. 그래도 그때는 불 끄면 조용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불을 다시 켜신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못 들어오게 방문을 닫고 잠그시기까지...


두 아드님의 에너지가 고갈돼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평소에 먹으라고 입에 떠줘도 안 먹던 물을 그렇게 찾으시기 시작한다. 그래. 많이 뛰어서 목마르겠다 싶어서 일어나서 물을 떠드리고 눕는다. 그러면 이번엔 갑자기 점만큼 작은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야겠다는 둥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잠을 미루신다. 둘이 한창 물 타령하고 누웠다 일어났다 하면서 똥개 훈련 시키면 결국 또 샤우팅...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짜내 아무도 듣지 않는 자장가를 불러본다. 이번엔 갑자기 둘 다 엄마 껌딱지가 되신다. 서로 엄마 옆에서 잔다고 싸우신다. 결국 난 둘의 가운데 누워서 2절까지 부른다. 내 눈이 먼저 잠긴다. 땅에서 누가 나를 끌어당긴다. 내 코 고는 소리에 내가 놀래서 선잠에서 깬다.


두 아드님이 잠들어 있다. 이불을 덮어주는데 자는 모습이 '천사'다. 내일 아침이 되면 어차피 또 뚜껑이 열릴 거라는 걸 알지만 아까 왜 그렇게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을까 스스로를 자책할 정도로 자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다.

전쟁같은 현실이 매일같이 이어지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참 예쁘다. 사랑스럽다. (사진=독자 이지연 님 제공)

독자 이지연 님  olivenote@olivenote.co.kr

<저작권자 © 올리브노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거진의 이전글 촉촉함 살려주는 가습기..난 이걸로 '겟' 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