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를 괴롭혀 온 강박적인 의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타인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할까? 어떻게 경험할까? 다른 인간이 경험하는 의식이 어떤 것인지 타인인 내가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유인원이나 고양이나 곤충의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럴 수 없다면, 결국 나는 혼자라는 얘기가 된다.
- Greg Egan, Closer
그렉 이건의 작품 중 처음 접한 『쿼런틴』은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 취향 저격은 아니었기에 이후로 굳이 다른 작품을 찾아 읽진 않았다.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건의 단편집 『대여금고』를 빌린 건 행운일 거다.
이 작가는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빛을 발한다.
일견 SF와는 거리가 있는 주제 - 인간에 대한 탐구 - 를 지극히 SF 적인 소재에 녹여 내는데, 장편에서는 긴 호흡과 이야기가 주제를 희석시키는 느낌인 반면 단편은 주제와 소재의 대비를 극명하게 느끼며 한 편을 완독할 수 있다.
타인은 정말 존재하는 건가.
내가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 세상은 내가 지금 보는 것과 과연 똑같을까.
내가 약을 먹고 지금과는 다르게 세상을 인식하게 된다면, 그건 진짜 나일까.
나의 정체성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SF만이 가능한 접근법으로 서술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