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작스러운 상실에 약하다
두 사람은 매일 밤 8시에 만났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달이 뜬 밤에도 뜨지 않는 밤에도. 이것은 요즈음 시작된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그 지난해에도, 또 그 지지난해에도 그랬다. 그러나 8시에 만나 12시에 작별인사를 하는 매일 밤의 데이트도 머지않아 끝나게 되었다. 1주일이나 2주일만 지나면 그들의 만남도 영속적인 것이 된다. 일년 내내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6월이 되면....... 두 사람은 그렇게 맹세했다. 그리고 올해도 분명히 6월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그들은 지금까지의 생애에서 줄곧 기다려온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과장은 아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것은 그녀가 7살, 그가 8살 때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것도 그가 8살, 그녀가 7살 때의 일이었다. 가끔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중략)...
조니 마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비틀거리며 사람들을 헤치고 열린 공간으로-사람들의 눈이 쏠려 있는 지점으로-혼자 다가갔다.
곧 지키고 있던 경관이 다가와 조니 마의 어깨를 잡고 말렸다.
조니 마가 속삭였다.
"저 신문지를 조금만 치워주시겠습니까?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요......."
경관은 허리를 굽혀 젖은 신문지 끝을 잡고 아무렇게나 젖혔다가 다시 덮었다.
"어떻습니까?" 경관은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는 분입니까?"
"아니, 아닙니다." 조니는 힘없이 대답했다. "잘못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생각한 그대로 대답했다.
그것은 그가 결혼하려고 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가 결혼하려는 여자는 저런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무도 닮지 않은 얼굴이었다.
- Cornell Woolrich, Rendezvous in Black
나는 상실에 약하다. 갑작스러운 상실에 특히 약하다. 서서히 다가오는 이별, 천천히 오는 끝은 그래도 괜찮다. 그럴 수 있지, 그게 인생이니까. 지금은 슬퍼도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 끝내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던 그 순간조차도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하지만 행복의 절정에서의 갑작스러운 상실은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추억 같은 건 되지 않는다. 여전히 피 흘리는 날것이다. 종종 이제는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서 그때의 감정이 몰려오면 숨이 막힌다. 더 시간이 많이 지나면,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담담하게 볼 그날이 온다면 젊어서의 아름다운 추억이라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복의 랑데부』는 미스터리물로 분류되지만 범인은 처음부터 명백하고, 살인에도 그럴싸한 트릭 따위는 없다시피 하기에 홈즈나 포와로의 정통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은 아닐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복수의 용의자에게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고통을 선물하려는 남자라는 참신한 설정은 작가가 이전에 쓴 『검은 옷의 신부』의 설정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의 정수는 추리도 서스펜스도 참신한 설정도 아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한 남자는 갑작스러운 상실을 제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더없이 감상적이고 어두운 문체로 펼쳐지는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
잃어버린 무언가가 생각나려 하는 때 나는 멜랑콜리한 문체의 이 작품을 읽으며 울고, 내가 운 이유는 오직 이 작품 때문이라 나 자신을 속이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