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누군가를 원했다.

by 묘묘

그르누이는 순간 당황했다.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이 향기는 뭔가......, 이 향기가 사라져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기억 속에서는 모든 향기가 영원한데, 현실의 향기는 소모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향기가 소멸되어 버리면 내 향기의 샘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예전처럼 다시 벌거숭이가 되어 대용품의 냄새로 근근히 버티며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은 전보다 훨씬 더 비참한 일이다! 이미 황홀한 나 자신의 향기를 찾았고, 그것을 소유했던 나는 결코 그 향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절대로 냄새의 기억을 잊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내 나머지 인생은 오로지 그 향기의 추억에만 매달릴 게 분명하지 않은가. 바로 지금, 앞으로 내가 소유하게 될 그 향기를 미리 떠올리는 것처럼......, 그렇다면 도대체 그게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중략)


그는 자신의 승리가 무서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단 한 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소유하기를 갈망해 왔던 향수, 2년에 걸쳐 만들어 낸 사람들의 사랑을 획득할 수 있는 그 향수를 바르고 마차에서 햇살이 따사로운 광장으로 내려서던 그 순간......, 그 순간에 벌써 그는 향수가 저항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바람처럼 빠르게 펴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기쁨은커녕 최소한의 만족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 그 일이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하고 증오받는 것에서.


- Patrick Süskind, Das Parfum



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본 모습보다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을 믿진 않았다. 진짜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나 자신이 싫었지만, 세상 누군가는 내가 보여주는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사랑해주길 원했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르누이를 이해했다. 아주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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