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얼마 전 뉴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센트럴 파코의 동물원. 북극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연못 근처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연못 속에 뛰어 들어가 곰들 주위로 헤엄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말한다. 그 아이는 친구들이 옷을 벗기만 하고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자 벗어 놓은 옷을 감추어 버린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물 속에 뛰어든다. 그 서슬에 평온한 모습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커다란 곰 한 마리가 화들짝 놀란다. 곰은 제 주위에서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성가시게 굴자 화가 나서 앞발 하나를 뻗어 아이들을 후려친다. 그러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두 아이를 잡아 여기저기에 살조각을 흘리며 어적어적 씹어 먹는다. 경찰이 달려오고 시장까지 현장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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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교육 행위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교육을 위해 선택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 동물의 생존권을 존중한답시고 동물을 인격화하고 아이들의 친구같은 존재로 만다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사람들은 어떤 동물이 본능에 따라서 잔인하게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지라도 이 지구상에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그런 동물을 착하고 상냥하고 재미있고 너그럽고 영리하고 침착한 존재로 만들어 존중을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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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이유로 나는 센트럴 파크의 불쌍한 어린이들은 교육을 덜 받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받아서 죽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은 우리의 떳떳하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 그릇된 교육 때문에 희생된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못된 존재인지를 잊게 하기 위해서 곰이 착한 동물이라고 가르친 결과이다. 그 아이들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곰은 어떤 존재인지를 정직하게 알려주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으리라.
- Umberto Eco, Il Secondo Diario Minimo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수록된 1987년 칼럼.
어떤 대상에 대해 차별과 편견이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쉬운 방법은 그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은 일절 하지 않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는 흔히 그렇게 학습된다. 그렇게 이상화된 PC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을 알게 되면서 깨어지곤 한다.
우리는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나와 내 이웃, 우리 모두는 이상화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는 게으르고, 누군가는 방탕하며, 누군가는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누군가는 타인을 질투하고 모함한다. 무언가를 긍정하는 건, 그 존재가 아름답고 선하기 때문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그 존재의 무수한 결점과 단점을 알면서도, 그 존재를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