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속고 싶기 때문에 속는다
텔레비전에서는 언제 봐도 매력적인 배우 출신의 대통령이 능숙한 말솜씨와 성우 뺨치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연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환자들은 파안대소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저 잠자코 있는 사람도 있었고 개중에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한두 명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통령은 늘 그렇듯이 감동적으로 연설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의 연설은 환자들이 웃음을 터뜨릴 만큼 감동적이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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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인가 아닌가를 이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언어는 상실했지만 감수성이 특히 뛰어난 그들은 찡그린 얼굴, 꾸민 표정, 지나친 몸짓, 특히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박자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따라서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에 속지 않으며 현란하고 괴상한(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말장난과 거짓, 불성실성을 간파하고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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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도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잘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녀는 언어상실증 환자들과 정반대의 상태에 있었다. 그녀는 연설을 듣고 감동하지 않았다. 어떤 연설을 듣는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일 리 없었다. 감정에 호소하려는 목적을 가진 연설은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녀의 마음을 손톱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그녀도 우리와 똑같이 내심으로는 연설에 깊이 빨려들어간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설득력이 없어요. 문장이 엉망이고 조리도 없어요. 머리가 돌았거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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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대통령 연설의 패러독스였다. 우리 정상인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잘 속아 넘어간다. ('인간은 속이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속는다.') 음색을 속이고 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할 때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 빼고 전부 다 속아 넘어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Oliver Sacks,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1993년 노량진 국민문고에서 우연히 읽은 책. 신경 장애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24편에 담았다.
독특한 사례들에 대한 흥미,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계기, 인간 승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최근 다시 읽을 때 유독 흥미를 느낀 에피소드는 『대통령의 연설』. 속고 싶어 속는 사람들을 유독 많이 접할 수 있는 작금의 현실 덕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