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느 날의 이야기
우리 집 삼님(고3)과 일님(고1)은 ADHD인데, 삼님은 충동성 끝판왕인 일님을 이해 못 하고 일님은 조용조용 멍 때리기 끝판왕인 삼님을 답답해한다.
그런 와중에 둘이 비슷한 부분도 있는데, 둘 다 불편한 감정 혹은 불편한 상황이 있으면 참을성도 눈치도 없이 자꾸 불평불만을 실시간으로 늘어놓는다. 알았다, 조치할게. 해결할게, 원하는 대로 해줄게 등 무슨 말을 해도 머릿속에 끝없이 뭉실뭉실 떠오르는 불평불만을 가장 만만하고 편한 상대-내게 계속 이야기한다.
일님이 본인의 방학특강이 마음에 안 든다는 불평을 장장 4시간을 늘어놓은 후 나는 폭발했다. ("다른 수업을 듣거나, 듣지 않거나, 너 마음대로 하라 했는데 왜 자꾸 계속 불만인데! 네가 듣겠다고 알아봐 달라 해서 내가 분명 이 수업은 이러이러하다는 말도 해줬잖아!")
폭발 다음 날, 내 눈치를 보는 일님은 '사람이 알았다고, 그만 말하라 하면 그만 말해야 한다, 네가 그런 불평불만을 내게 말하고 싶은 충동이 계속 있어도 상대편 기분도 보고 좀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그 후 일님의 화려한 충동성 일화들을 이야기하다 삼님의 입시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는 이야기하는 동안 대화의 주제가 산으로 가는 게 일상다반사이고, 이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조건 올해 가고 만다! 나는 N수는 안 한다!" 선언하는 삼님에게 무심히 한 마디 던졌다.
"그래, 좋은 마음가짐이다. 설사 나중에 바뀐다 해도 공부하는 동안은 그런 자세로 하는 거지."
"아니, 난 진짜 안 한다니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서. 나도 고3 때 시험장 갈 때까지 절대 재수는 안 한다 했거든. 그런데 전기 떨어지고 후기 시험을 보러 가야 하는데, 시험 보는 전날 밤에 너무 시험장에 가기 싫은 거야. 그래서 그래서 할머니께 '엄마, 나 시험장 안 갈 거니 내일 깨우지 마요.'하고 그냥 자고 얼마 후 재수 학원 등록했어."
무심히 말한 나의 입시 비화를 들은 삼님은 아침을 먹다 말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엄마. 혹시 말야, OO이(둘째)의 충동성이 엄마의 유전자에서 온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럴 지도?"
일님은 툭하면 내게 "엄마, 엄마는 나와 영혼의 쌍둥이야. 우리는 같은 영혼을 갖고 있어" 등의 낯간지러운 말을 해서 뭔 소리냐. 이상한 주장 하지 말라는 빈축을 사기 일쑤인데, 삼님의 지적을 듣고 나니 내가 물려준 거니 앞으로는 애들을 구박 말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겠다 자성하게 되었다. 그래 뭐, 앞으로는 투덜투덜 불평불만 해도 좀 너그럽게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