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들이 복돋아준 용기와 자신감으로 나의 마지막 사랑을 준비했다.
첫째를 낳고 벌써 21개월이 지났다.
둘째를 품은지도 37주을 넘어서 언제 나와도 괜찮은 몸무게가 되었다. 첫째때는 일을 하다보니 37주에 2.65kg으로 간신히 미숙아를 넘겨 나오다 보니 둘째는 그보다는 조금 더 키워서 출산하고 싶었다.
첫째는 남아로 정기검진때는 머리만 아주 조금 크다고 했지만 낳고 보니 내가 보기에는 너무 작았다. 37주를 간신히 넘겨서 나왔지만 2.65kg의 아기는 정말 살이라고는 한 점 없는 뼈만 보이는 상태였다. 다행히 검사상 아무 이상도 없고 황달만 좀 오래 갔다.
첫째의 출산은 초산치고는 진짜 순산이었지 싶었다. 자정을 넘긴 12시에 터진 양수를 시작으로 3시에 병원에 가서 몇시간 뒤 1시간정도 진통하다가 겨우 3센치 열려서 무통을 맞고 오후 2시정도에 출산할때까지 고통보단 통증에 가까운 정도로 정말 별로 아프지 않고 나름 우아하게(?)출산이 가능했다. 오죽하면 담당의사선생님께서 아직 정신이 멀쩡하구만이란 소리까지 했다. 의학의 축복을 한껏 받은 나의 몸은 그렇게 정신이 멀쩡한채로 첫 아이를 품에 안았고 둘째도 이 정도면 낳을만 하겠는데?하는 자신감을 한껏 품었다.
둘째를 고민할때 가장 큰 걱정은 임신기간과 첫째 아이, 집문제, 하고 있던 사업정리의 문제 등으로 첫째가 돌이 되고 나서야 남편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첫째의 돌 쯤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금 반환 문제가 해결되어가기도 했고 사업정리도 끝나갔다. 이때 사업정리를 결심한 것을 남편은 정말 잘한일이라고 좋아했다. 저녁시간때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장 받는 다는 것이 남편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업 정리로 인해 무직자였던 남편도 운 좋게 중소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35살이 넘은지라 어지간해서 취업이 쉽지 않았는데 멀리 대도시로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노력한 덕인지 다행히 합격하고 정사원이 되었다.
중소기업의 정사원이지만 기본적인 복지가 있어서 출산과 육아에 있어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둘째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둘째를 준비해보자던 우리는 단번에 둘째가 생겨버렸다...
간신히 1년만에 회복된 몸이 건강해서 였는지 바로 둘째가 생겨버리고 연년생같은 2살터울의 남매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이 30에 아들하나 딸하나 이상적인 4인가족이 되었다. 남편이나 나나 형제와 자매의 형태의 가족이었기에 아들, 딸이라는 남매 조합은 우리에게는 더욱이 새로운 느낌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와준 이 천사들과 즐겁게 지내는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