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도시의 작은 동네에서 10여 년을 살다 가족을 피해 독립을 위해 산골 기숙학교로 입학을 할 정도로 집이 싫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19살에 첫 현장실습을 서울로 가면서 그 집으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생활고로 그 싫고 싫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 독립엔 꼭 성공해야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틴 7년, 하던 일도 슬슬 질리기 시작해 꿈에 그리던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1년 반을 독립해 혼자 사는데 아 외롭다. 이 공허함을 어떻게 채워야 되는 것일까.
내가 결혼을 결심한 큰 계기가 된 1년 반의 일본유학생활이었다. 7년을 모아 온 돈과 10여 년을 갈고닦은 충분한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이 알 수 없는 공허함만은 어떻게 해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정확히 코로나시기에 떠났던 유학이라 외로움은 더욱 사무쳤다.
나의 20대 초반까지의 인생관은 결혼은 미친 짓이고 애를 낳는 것은 손해일 뿐이라는 생각이 짙었다. 내가 보고 자라 온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강해 의식주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능력 있는 가장이지만 항상 자신이 우선이며 자신의 감정이 우선인 몸만 큰 어른이 아빠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면서 술만 마시면 아이들과 아빠를 힘들게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는데 오죽하지 않을까.
이 어중간하게 얽혀있는 관계 속에서 끊어내지도 이어갈 수도 없는 가족관계가 가장 싫었다.
증오보다 힘든 애증의 관계인 것이다.
차라리 그냥 버리지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실질적인 측면에서 버림 당하는 것보다는 나은 생활일 것임은 분명하다. 책임감 하나로 붙들며 키워왔을 것이다.
그 책임감 덕분에 그래도 보통의 아이만큼은 누리며 살아왔을 것에 대해서는 감사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불안정한 가족의 관계 속에서 성장한 내가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는 것은 웃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성인이 되면서 정한 한 가지
"내가 가장 우선이며 나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이제는 내가 원하지 않는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나라는 성인으로서의 한 개체이지 때문에 나 하나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하루빨리 독립하는 것이 목표로 하던 20대 초반의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