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하여 달려서 바티칸까지27

27 전쟁의 허무와 비인간성, 광기

by 강명구

27 전쟁의 허무와 비인간성, 광기

미대사관의 주요시설을 파괴한 폭파반과 미 해병대의 경비 병력을 태운 마지막 헬리콥터가 요란한 금속성 진동음을 내며 사이공의 미대사관 지붕을 떠난 후 1975년 4월30일 낮 12시 45분, 당시 20세의 어린 베트남 게릴라 구엔 투룽 키엔양에 의해 최초로 베트콩임시혁명정부 깃발이 높이 게양됐던 통일궁에는 지금도 그날의 해방을 기리는 무수한 붉은 깃발이 다시 내걸려있다.


통일을 이룩한 베트남을 종주하며 통일에 대하여 사색을 할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통일을 우리 세대에 이루어 온전한 나라를 자손들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소명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전쟁의 허무와 비인간성, 광기에 대하여 사색할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의 통일의 길은 아직 멀어 보이지만 얼마든지 여러 가지 장점들을 새롭게 결합한 아름다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우리는 아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 상태로 있지만 기술의 발전을 통한 큰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다는 장점도 있다.


전쟁은 죽음의 공포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화염에 불길이 치솟을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자라고 철들었다. 지금도 한반도는 미사일의 각도를 조금 비틀었을 뿐 미사일이 상시로 날아오르고 있다. 내 몸이 어디에 있든 바람 소리가 머리를 스치면 아찔하면서 소름이 돋는다. 의도하든지, 조금만 오류가 생기면 언제든지 내 정수리 위에서 터질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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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의 최고의 목표는 생존이다. 인간의 감정도 생존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은 것은 아직 안정된 생명을 가지지 못한 아이의 불안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불쾌함,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목숨에 관계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전쟁은 그런 생명의 몸부림도 일순간에 무력하게 만든다.


북핵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북한을 비이성적인 집단, 미친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북의 핵 개발 담론의 밑바닥에는 ‘안보 페러다임’이 있다. 1957년부터 한반도 남쪽에는 전술 핵무기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남한 전역에 핵탄두가 무려 763개나 배치되었다. 북핵 문제가 어렵게 꼬이는 데는 미국의 패권의식과 기독교 선민의식이 한몫을 담당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당위성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일본이 핵무장을 위한 명분이 되고 동북아에 핵 경쟁이 점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과 군비경쟁으로 이어져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에도 치명적인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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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의 열쇠는 북한의 안전보장일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 개선이 없이 북핵 문제 해결은 없다. 당연히 경제제재부터 풀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북·미 수교와 불가침조약 체결 등 후속 조치들이 이어져야 한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의 대표작은 플래툰, 풀 메탈 재킷과 함께 ‘지옥의 묵시록’이다. 이 영화는 전쟁의 허무함과 참상, 그 공포가 가져온 광기의 지옥 같은 모습을 몽환적 묘사와 최고의 공포감으로 표현해낸 반전 영화의 대표작이다.


적진 깊숙한 곳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라온 윌러드 대위는 전쟁 스트레스로 정신이 황폐해진 후유증을 치유할 틈도 없이 또다시 새로운 임무를 받는다. 임무는 베트남-캄보디아 접경에서 부하들과 함께 이탈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커츠 대령을 암살하라는 명령이었다. 커츠는 광기에 빠져서 그곳에 사교 집단과 같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다. 그는 미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윌러드 대위의 팀이 보트를 타고 커츠 대령이 있는 캄보디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강을 올라가면서 갖가지 전쟁의 광기를 목격하게 된다. 윌러드의 여정은 겉으로는 모험이지만 동시에 전쟁의 허무와 비인간성, 광기에 대한 비유이자 자기발견의 여정이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잘 이해하려면 이 전쟁이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사이의 전쟁이 아니고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들이 이 전쟁에서 싸운 대상은 미국이지만 크게 보면 서구 열강 세력이다. 그 서구의 세력들이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으려 하자 베트남이 독립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전쟁을 하게 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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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은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군이 폭격과 공습, 수색 섬멸 작전 과정에서 네이팜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투하하고 고엽제 등 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희생시킴으로써, 미국 내에서 반전 운동을 촉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 군사개입에 대한 정당성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승리를 거둔 북베트남도 둘로 분열되었던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기나긴 여정에 돌입했다. 그것은 갈라져 있던 기간보다 더 긴 여정이 될 지도 모른다. 전쟁만큼은 아니겠지만 그에 비견할 아픔과 고통이 뒤따랐다. 자본주의로 살아온 남쪽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로 바꾸어서 살려면 가진 자에게는 지옥의 나락을 맛보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집단처형은 없었지만 역사바로세우기는 필요했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전쟁을 치렀던 나라는 이제 전쟁이 끝나면 애국자와 부역자로 국민은 양분된다. 미국에 빌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정치인, 사업가, 어용 지식인, 언론인들이 포함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 아픔이 있을지라도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바로세우기는 필연이었다.


1976년 6월에 개최된 남. 북베트남 통일 국회에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30여 년 아니 100년에 걸친 전쟁을 겪은 국토의 황폐와 갈라졌던 이념의 통합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1978년 남베트남의 개조 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되면서 사회주의화와 통화개혁 등이 단행되었지만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랐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호찌민 시의 경제적 실권을 잡고 있는 화교의 대량 이탈 사태를 야기했다. 보트피플의 대부분은 화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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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통일 이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사회주의식 집단주의와 하향식 통제가 경제를 깊은 수렁에 몰고 갔다. 그들은 사람들을 덩어리로 취급했다. 사람들을 개인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교조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이란 계란을 깨뜨릴 줄만 알았지 오믈렛은 만들지 못했다. 그것이 축복받아 마땅할 통일 후 베트남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가난에 시달리게 했다. 통일 15년이 되는 90년도까지 베트남은 1인당 국민소득 2백 달러가 채 안 되는 세계 최대 빈국의 하나로 전락했다.


베트남은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구엔 반 린의 주도하에 1986년 12월에 열린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 시회주의 노선을 수정하고 시장경제 도입을 전격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도이모이의 시작이다. 국영기업 외에 사기업과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매년 7~8%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고속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2006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베트남 경제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것은 베트남이 세계경제 질서에 통합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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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게 마련이다. 이제 꼬박 두 달간의 베트남 종주가 끝나고 캄보디아 국경을 넘었다. 캄보디아가 낳고 한국이 키운 당구 여신 스롱 피아비의 나라이다. 엊그제는 호찌민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면서 호찌민 원불교 교당에 가서 법회에도 참석했다. 가녀린 듯 강골 같은 한진경 교무님이 그 어려운 해외교화에 힘쓰시는 모습이 애잔했다.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고 이타적이더라도, 그들이 모인 사회는 구조적으로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으로 타락한다.”라는 말을 사색하며 국경선을 넘다가 이민국 직원하고 암암리에 거래하는 브로커에게 그런 줄 알면서도 경미한 사기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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