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하늘의 덕통사고
“대체 왜 그렇게 야단이야?
얘네들이 뭐 그리 특별해?"
시작은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시사상식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트렌드는 알아야 하니까 공부라고 생각하고 한번 들여다 보자, 하고 나무위키를 검색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검색어: 방탄소년단]
(이제부터 의식의 흐름이다.) 어? 뮤직비디오가 뭐 이렇게 많지? 어라, 영상이 후지진 않구만. 음악은 뭐 신나는 정도네. 춤은.........엥? 얘네들 뭐지? 이 말도 안되는 안무는? 리액션 영상? 이건 또 뭐야. 달려라방탄? 이건 또 뭐야아아!
멤버 이름도 몰랐고, (심지어 멤버 이름을 다 아는 아이돌은 동방신기가 마지막이었다.) 아이돌 음악을 10대나 듣는 자본주의 음악이라며 내심 무시하기도 했었다. 아이돌은 고사하고 평생 가수의 팬질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방탄소년단 유투브 영상을 5시간 동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이 끝이 아니었다.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고, 이제 5개월 째…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출구가 없다는 BTS 입덕의 세계에 덜컥 들어와 버린 것이다.
1단계, 텍스트인간의 유투브 입문
요즘 아이들은 네이버보다 유투브에서 검색을 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BTS로 유투브 헤비유저(!)가 되어보니 느낀 점은- 아, 텍스트는 영상을 이길 수 없구나.
이미 뮤직비디오 등 영상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BTS는 그것을 넘어 춤, 퍼포먼스, 영상, 예능, 드라마 등 종합예술선물세트를 제공한다. 스케일이 큰 고퀄 영상 뮤직비디오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칼군무 연습 영상, TV출연이 어려운 중소기획사라 돌파구를 찾았던 자체예능콘텐츠 등 파도 파도 화수분같은 볼거리로 눈과 귀를 자극한다. 거기에 전세계 팬들이 제작하여 올리는 리액션 영상, 직캠영상, 각종 편집영상이 그 수십, 수백배다. 유투브 세상을 그렇게 노닐다 보면 어느새 몇날 며칠이 순삭이다.
그들도 이런 사실을 아는지 가사에 쓰기도 했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증상은 아닌 모양이다.
Stop 이제 그만 보고 시험공부해
니 부모님과 부장님 날 미워해
봤던 영상 각종 사진 트위터 브이앱 본보야지
알아 좋은 걸 어떡해
그만해 뮤비는 나중에 해석하고
어차피 내 사진 니 방에도 많잖어
한 시간이 뭐야 일이년을 순삭해 - Pied Piper(2017)
2단계, 그냥 아이돌이라기엔
온갖 감각적 유혹에 정신이 팔려 영상을 보다보면, 그들의 노래 가사가 들린다. 그들 자체로도 찬란한 청춘 그 자체이지만, 그들이 직접 만드는 노래의 일관된 메시지 역시 청춘이다. 청춘의 불안, 고민, 우정과 사랑에 대한 솔직하고 진지한 이야기다.
그들의 외침은 청춘의 억압을 거부하는 사이다 같은 존재이기도 하며,
좋은 집 좋은 차 그런게 행복일 수 있을까
In Seoul to the sky 부모님은 정말 행복하실까 – N.O.(2013)
아 노력 노력 타령 좀 그만둬
아 오그라들어 내 손 두발도 – 뱁새(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말고 툭툭 털어 버리자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Forever we are young
넘어져 다치고 아파도 끝없이 달리네 꿈을 향해 – EPILOGUE:Young forever (2016)
답도 없는 고민 고민 그 속에 빠져있지마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다 해도 웃고 떠들며 바람을 가르자 – So what(2018)
청춘의 불안을 견디고 있다면 더욱 몰입이 될 가사들. 하지만 나 역시-이미 어른이 된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어딘가는 모자라고 위태롭다. 그들의 가사는 이 어른의 가슴에도 날아와 박힌다.
자신의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이 친구들은, 이미 아티스트. 그냥 아이돌이라기엔 부족해.
3단계, 또다른 주인공, 아미
한 스타의 노래와 행동에 담긴 메시지가 청소년팬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력을 주고, 팬의 전폭적인 지지에 대해 스타는 감사함을 잊지 않고 스스로 더 성장한다.
BTS를 정말 특별하게 만드는 건 팬덤 ARMY다. 아미의 화력이나 결집력은 이미 유명하다. 빌보드시상식에서 소셜아티스트상의 전세계 소셜미디어 투표수 전체의 94%가 BTS였다고 하니...(저스틴비버, 셀레나고메즈 등이 후보였는데..!)
이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건 오랫동안 아주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쌓아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BTS의 온갖 영상들로 그들의 역사를 찬찬히 찾아보는 것은 마치 BTS와 ARMY가 만들어낸 한편의 성장드라마를 지켜보는 것과 같았다. 처음엔 보잘것 없었던 소년들이 스스로와 팬들의 노력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자라게 되었다는 스토리.(결국 빌보드 1위까지!) 좌절하는 일이 더 많을 10대 20대 아미친구들에게 이는 엄청난 성취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 청춘이 그저 예쁘고 빛나보인다. 어느새 난 BTS뿐 아니라 아미의 팬도 되어버렸다.
우리모두, 러브유어셀프
BTS에 대한 내 이 감정은, ‘청춘’에 대한 나의 찬양 혹은 지지라고 해야할 것 같다. BTS와, BTS를 사랑하는 모든 청춘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때를 보내는 꽃같은 모든 존재들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BTS의 앨범명처럼 자신을 사랑하고(Love yourself) 그 시절을 그저 신나게 즐기기를 바란다. 좀 덜 아프고, 더 웃고, 그 크고작은 성취의 기억을 잊지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한 응원 혹은 지지를 한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잊어버렸던 내 안의 청춘의 설렘까지 다시 깨워준 능력자 방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누가 뭐라든, 주책이라는 오명을 기꺼이 쓰고 아미가 되겠어! *^^*
ps. 빌보드 200 1위, 핫100 10위- 글쓰는 사이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 인정하는 글로벌 슈스! 이렇게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자랑스러운 방탄이들과 아미들, 너무X100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