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출판기념회는 문화행사일까, 수금행사일까
정치의 계절이다. 제9회 지방선거가 6월로 다가왔다. SNS에는 본인의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게시글이 넘쳐난다. 평소에 책과는 거리가 먼 지인이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하길래 봤더니 역시나 지방선거 출마용 행사였다. 형식만 보면 문화행위다. 출판이고, 저술이고, 북토크다. 그런데 목적은 정치자금을 얻는 행위이다. 결국 종이를 매개로 또 다른 종이를 확보하는 셈이다.
책은 원래 생각의 기록이고, 독자와의 약속이고, 저자와 독자의 공감의 매개체이다. 독자가 책을 읽고 정보를 얻으며,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책의 본래 용도다. 그런데 출판기념회가 사실상 정치자금 통로로 기능하는 순간, 책은 메시지의 매체가 아니라 합법의 외피를 두른 모금 도구로 전환된다.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찍어낸 책이 정치자금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서영교 의원 출판기념회 논란
최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 측은 해당 행사에서 통상적인 도서 판매라고 보기 어려운 현금 수수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책값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 오갔고 회계 처리 또한 불투명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일부에서는 이를 과거 정치권에서 불거졌던 돈봉투 사건과 연결 지어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영교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해명했다. 출판기념회는 출판사가 주관한 행사였으며, 책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은 오히려 법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에 정가를 받고 판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책을 받아가지 못한 참석자들에게는 출판사가 별도로 배송 절차를 진행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불법 행위가 있었던 것처럼 몰아가는 정치적 공세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번 논란은 개별 인물의 해명을 넘어, 출판기념회라는 형식이 정치자금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의문을 다시 제기한다. 행사의 형식이 출판사 주관이라는 점만으로 정치적 책임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출판기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상 선관위에 신고할 의무가 없다. 모금 액수 제한이 없는 데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치인 입장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치후원금은 연간 한도(국회의원 후원회 기준 1억 5000만 원)와 신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금액은 경조사비로 분류돼 신고나 한도 규제가 없다. 책 판매 수익이나 축하금 성격으로 받은 돈은 정치자금으로 분류되지 않아 투명한 회계처리가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책을 냈느냐"가 아니다. 돈의 성격을 무엇이라 부르느냐, 그리고 그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느냐에 있다.
정치후원금은 한도와 신고 의무가 있다. 출판기념회 축하금은 그렇지 않다. 이 차이 때문에 정치권은 굳이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도 거액을 모을 수 있다. 그러니 종이를 팔아 종이를 얻는 일이 반복된다.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받은 지역 주민들과 관계기관이나 사업주들은 고민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현역 시·구의원과 출마 준비자, 직능단체 등 정치권력 앞에서 '을'의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갑’의 위치에 서 있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자발적 후원이라기보다 관계의 대가를 요구받는 구조적 압박이다.
"충분한 액수를 챙겨야 다른 업체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게 지역 사업자들의 공공연한 하소연이다. 공직자도 인사권자가 될 유력 인물에 자칫 '미운털'이 박힐 것 같고, 부담스럽지만, 제3자를 통해 체면치레를 안 할 수 없는 구조다.
2014년부터 제자리걸음인 법 개정
201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출판기념회에서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책은 정가로만 판매하게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제안했다. 출판사가 의원 등이 개최한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책을 정가로 판매하는 행위만 열어두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선관위는 의원 등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기 2일 전까지 개최 일시와 장소, 출판사명 등을 선관위로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현행 신고의무해태 행위에 포함시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벌칙 규정도 담았다.
19·20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폐기됐다. 현재 국회에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출판물 판매 수입을 정치자금에 포함하자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출판기념회 축하금을 음성적 정치자금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여야를 따지지 않는다. 자신들의 수입원을 스스로 차단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스님이 제 머리 깎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책이 사상의 종이가 아니라 자금의 종이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이미 공개적 소통의 장이 아니라 현금 수수를 통해 정치적 결속을 확인하는 장소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책은 명분이고 책값을 훨씬 뛰어넘은 돈봉투가 본질이 됐다.
합법의 외피를 두른 채 불투명한 현금 흐름을 방치해 온 관행은 정치가 스스로 투명성을 포기해 온 결과다. 이런 '수금기념회'는 정치적 관계와 영향력이 돈으로 확인되는 금권정치의 전형이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돈이 투명하고, 동일한 규칙 아래 모여야 한다는 것이 기본 조건이다. 책이 정보 전달의 종이가 아니라 자금 전달의 종이로 소비되는 순간, 정치는 설득이 아니라 동원으로 기울어 버린다.
해법은 단순하다
현재의 출판기념회 관행이 정치자금 우회 통로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오랜 기간 제기되어 왔다. 우선 출판기념회 수익을 정치활동에 사용할 경우 정치자금으로 의무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일정 금액 이상의 수익에 대해서는 기타소득신고 대상으로 보거나 정치자금으로 규정해 회계 보고를 하도록 구체적인 금액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정치인 후원금 제도를 현실화해 정치인들이 굳이 이런 우회 통로를 찾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실무적으로는 한 사람이 한 권의 책만 카드로 구매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 지출 내역 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현재 지적되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모든 정치인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치 후원 제도가 현재처럼 숨겨진 정치자금 통로로 오해받는 일이 줄어들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제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의원들이 원외 정치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리 만무하다. 그들에게 원외 정치인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견제해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출판기념회를 투명하게 규제하자는 제안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가장 손쉬운 돈줄을 스스로 막아버릴 만큼 용기 있는 정치인은 드물다. 결국 이 문제는 해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해법을 실행할 의지가 없어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지켜보고 있지만, 국회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