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 역사를 우습게 본 인간의 한능검 심화과정 도전기
"아빠, 나 37점 나왔어... 으아아앙!"
시험 전날, 한국사능력검증시험 모의고사를 채점해 본 막내의 대성통곡 소리가 집안을 뒤흔들었다. 속으로는 '그렇게 공부하라고 해도 안 하더니, 겨우 한 달 공부했어. 그리고 쭉 훑어본 정도의 공부로 37점 맞았으면 선방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대신 근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험장에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야. 대단해!"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일 내가 받을 점수가 딱 1점 더 높을 거라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사능력검증시험을 보자고 한 것은 '전략'이었다. 두 딸에게 한국사 공부를 시키기 위한 아빠의 치밀한(?) 계획. "아빠도 같이 볼게!"라는 한 마디로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전략이었다, 한국사를 공부시키기 위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국가 공인 시험으로, 공공기관·공무원·교원 임용 등에서 활용되는 사실상 공공 영역의 기본 자격 시험이다. 이 시험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의 취미 시험’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공적 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시험은 전반적인 기초 이해를 평가하는 기본(4·5·6급)과 자료 해석과 흐름 파악까지 요구하는 심화(1·2·3급)로 나뉜다. 두 딸은 기본과정에 응시했고, 나는 심화과정에 응시했다. 그래도 아빠의 자존심이 있지.
학력고사 세대, 그것도 문과 출신인 나에게 국사는 그야말로 25점 만점에 23~24점은 기본이었던 과목이다. 30년이 흘렀지만 '어디 한번 해볼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수험서를 샀다. 무려 3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선사시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고조선! 열정적으로 10페이지를 공부했다. 아니, 훑어봤다.
"옥저의 민며느리제, 부여의 영고, 삼한의 제사장, 동예의 무천..."
중얼거리며 외웠다. 그리고 삼국시대 앞에서 책을 덮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고사장에서 깨달은 진실
시험 당일. 응시자가 워낙 많아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두 딸은 저 멀리, 나는 홀로 낯선 교실로. 한 교실에 응시자 25명. 결시 인원 6명. 그리고 둘러보니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만 혼자 '어른'이었다. 다들 취업준비생이거나 대학생처럼 보였다.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스쳤지만, 곧 자신감을 되찾았다. '경험과 지식의 차이를 보여주지.'
심화과정은 총 50문항, 70분 동안 풀어야 한다. 80점 이상이면 1급, 70점 이상이면 2급, 60점 이상이면 3급이다. '1급은 무리겠지만 2급 정도는 따겠지' 하는 건방진(?) 생각으로 시험지를 펼쳤다.
시험지를 받았다. 1번, 2번, 3번, 4번... 쉬웠다. 술술술 풀렸다.
'역시! 10페이지 공부의 위력!'
그런데 문제는 5번부터였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공부한 삼국시대 이전까지의 문제가 딱 3문제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머지 47문제는 온전히 나의 '역사 상식'과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식'에 의존해야 했다.
시험은 장난이 아니었다
고려시대 문제를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문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보기를 봐도 모르겠다. 그냥 감으로 찍었다.
조선시대는 더 문제였다. 어디선가 읽고 들었던 반쪽짜리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나를 오답의 늪으로 빠뜨렸다. '아, 이건 알아! 세종대왕 때... 어? 아닌가?' 현대사는?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의 압박감에 시달리다 보니 급하게 서둘러 풀었고, 결국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47번 문제. 3점짜리 고득점 문제였다. 행정수도 건설 계획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 노무현 정부!' 자신 있게 ④번 칠레 FTA를 골랐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이라는 엄청난 힌트는 화려하게 무시한 채.
나중에 알았다. 정답은 ②번 포항제철소. 박정희 정부 시절 이야기였다.
행정수도는 노무현만 추진한 게 아니었다. 박정희 정부도 했었다.
38점의 충격, 반만년 한국의 역사를 우습게 본 죄
가채점을 했다. 1번, 2번, 3번, 4번... 완벽! 그 이후는... 참담했다. 최종 점수는 38점. 막내가 모의고사에서 받은 37점보다 딱 1점 높았다. 급수? 없다. 60점이 안 되면 불합격이다. 나는 당당히 '미달'이었다. 반만년 대한민국의 역사를 우습게 봤다. 10페이지 공부로 300페이지 시험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내 오만함이 부끄러웠다.
5월에 다시 심화과정 시험이 있다. 이번엔 진짜 제대로 각 잡고 공부해야겠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기출문제라도 풀어봐야겠다. 아니, 300페이지를 진짜 다 봐야겠다.
그런데 말이다... 두 딸은 대체 몇 점을 받았을까? 당연히 나보다는 많이 나왔겠지? 부디 그러길 바란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아빠의 자존심은 이미 38점에서 멈췄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