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에서 뒹굴면서 '강물처럼'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의리(義理)는 사람 혹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나 친구를 스스럼없이 돕는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는 신의(信義), 도리라고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의리’를 지키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사람들은 팍팍한 세상을 살면서 ‘이익(利益)’이 눈앞에 보이면 이 ‘의리’라는 것을 슬그머니 감춰 버린다. 나 역시 그렇다.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내세우지만, 대부분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생활습관처럼 활용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여러분! 사람대접을 받고 싶으십니까? 의리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사람대접을 받고 싶다면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구속될 때 누구를 위해서 구속됐는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구속됐습니까?”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1987년 노동자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 앞에 서서 의리를 외쳤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켰다. 의리를 지키며 정치를 했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노무현처럼 의리를 지키며 정치를 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정치’라는 업종에 의리는 필수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모습만이 중요할 뿐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편리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김민석이라는 정치인이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이재명 대통령의 일등공신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김민석은 그저 그런 정치인일 뿐이다. 의리와는 거리가 먼….
김민석은 2002년 노무현과 정몽준의 대선후보 경선 당시 민주당을 떠나 정몽준 후보 쪽으로 갔다. 이후 정몽준의 협상대표로 나와 “노무현은 내가 죽인다”라는 예쁜(?) 말도 했다.
그가 언젠가 페이스북에 의리와 배신을 이야기하길래, 나는 과거의 팩트를 들어 조곤조곤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그는 나를 차단했다. 화가 났겠지.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지금은 국무총리로서 차기 대선주자 중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는 절대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똑똑하다. 판단의 순간이 오면, 과거 의리를 지키지 않고 배신의 바람을 날리며 돌아섰던 그 모습을 기억해 낼 것이다.
의리가 없는 정치인이란 자기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짓(!)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현재 민주당 안에 있는 김민석이나 이언주 같은 정치인들이 그렇다. 과거 민주당이었던 이낙연, 김한길 같은 정치인들도 그렇다. 정치의 출발이 국힘당 계열이라면 의리와 배신을 논할 가치조차 없다. 국힘당은 정당이라기보다 이익단체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뿐 아니라 정치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국힘당 지지자들은 논외로 두겠다. 나는 국힘당 지지자들의 뇌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민주당만 보자. ‘문재인 대통령 + 이낙연 총리’ 시절, ‘이니 여니’ 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무한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과거의 행적을 감춘 채 이재명을 절대신처럼 부르짖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역겹다.
친문이니 친명이니 친청이니, 서로를 그렇게 고정시켜 놓는 순간 토론과 설득은 불가능해진다. 같은 당 지지자들끼리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친한 이웃조차 품지 못하는 좁은 마음이라면 차라리 정치에 관심을 끄는 편이 낫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한 줌 지지자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싸움을 부추기고 갈라놓고 찢어놓는 일부 정치인들이다.
의리(義理)는 사람 혹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나 친구를 스스럼없이 돕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 편의 허물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고, 네 편의 상처를 열심히 후벼 파고, 친한 이웃을 약올리고 조롱하는 짓은 그만하자. 그것은 의리가 아니다.
한 가지 더.
제발 정치인이나 지지자들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이라는 말을 좀 아껴 썼으면 좋겠다. 강물도 아닌, 샛강도 아닌 하천 시궁창에서 서로 싸우고 있으면서 무슨 바다를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