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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Jan 25. 2019

운문사 새벽 예불은 나를 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20년이 더 지난 일이라 내 기억의 맞고 틀림을 확인하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졸업한 대학교 학사정보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랬다. 이 책을 쓴 유홍준 교수에게 <한국미술사> 강의를 들었던 것은 1997년 1학기였다. 사회관 210호라는 큰 강의실에서 당시에는 획기적인 슬라이드만으로 강의를 진행했었다. 찰칵찰칵 슬라이드 사진 넘기는 소리와 교수님 목소리만 있어도 2시간의 시간이 모래시계처럼 소리 없이 지나갔다. 


학창 시절 들었던 유홍준 교수의 <한국미술사> 강의

대학교 때 내 전공은 법학이었다. 전공과목은 외우고 외워도 이해할 수 없었고 시험문제를 풀 때면 예상문제만 항상 달달달 외워서 답안지에 탁 털어놓고 나오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 학점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교양과목은 달랐다. 너무도 유명해서 이제는 식상해지기까지 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내가 관심 있는 것을 공부하니 재미도 있고, 성적도 좋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의 <한국미술사> 과목이 그랬다. 강의시간에 슬라이드가 나오면 노트에 그림까지 따라 그리며 강의 내용을 받아 적고, 내 느낌을 함께 기록했다. 나의 애마 티코를 끌고 '감은사지 3층 석탑'에 직접 다녀왔고 리포트를 써서 제출하기도 했다. 기말고사에 나온 문제는 그림까지 그리면서 답안지에 빽빽하게 적었다. 성적은 A+. 당연한 결과라고 감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노트로 함께 시험공부를 한 친구는 B 인가 B+를 받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었다. 제목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_산사순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지난 답사기에 나오는 산사들을 모아서 다시 출간한 편집본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거의 다 읽었지만 20대 학창 시절에 읽었던 느낌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한 전문가이다. 물론 학계에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문화유산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는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전문가적 권위와 대중적 언어가 결합된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다만 문화유산을 바라볼 때 나도 모르게 나의 시각이 아닌 유홍준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는 조금의 강박관념의 부작용은 있다. 하지만 내공이 쌓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부작용은 점차 희석되고 나만의 "눈"이 생기는 것은 나의 경험상 확신할 수 있다. 
       

▲ 운문사 소나무 숲 운문사의 노송들은 그 밑동에 상처가 있다. 일제가 송진을 공출하기 위해 송진을 받아낸 자국이다. 아직도 그 상처는 선명하게 남아서 일제의 발악함을 보여준다


청도 운문사의 새벽예불, 소나무의 깊은 상처

이 책에 나온 청도 운문사에 간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절이었다. 여러 가지 고민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차를 몰아 운문사로 향했다. 경내로 들어서니 막 새벽예불이 시작되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대웅전 입구 계단에 서서 그 예불을 듣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난 불교 신자도 아니고 '마하반야'로 시작되는 반야심경의 내용도 몰랐지만 비구니 스님들의 청아하지만 묵직한 울림은 힘들게 버티던 내 마음의 약한 고리를 툭 끊어버렸다. 예불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절을 빠져나와 입구로 걸어 나오며 운문사 입구 숲에서 한참을 앉아서 상처 입은 소나무를 바라봤다. 그 소나무 상처는 일제 말기 '대동아전쟁'때 송진을 공출하기 위해 나무 밑동에 도끼로 V자로 찍은 것인데 아직까지 그 소나무들은 상처를 간직하며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나무의 상처와 내 마음의 고단함이 오버랩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지금도 가끔 운문사를 가면 그때 생각이 나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 책에 나오는 20여 개의 산사 중에서 내가 가본 곳은 청도 운문사와 부안 내소사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다 가보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이 더 크면 집사람과 책에 나오는 산사며 들이며 강으로 여행 삼아 답사를 다닐 것이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은 이번 주말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소백산맥의 하늘을 보는 것이다. 
       

▲ <나의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 편 <나의문화유산답사기>산사순례. 유홍준 씀.ⓒ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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