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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통달 Oct 14. 2020

입장 바꿔 생각해봐? 그 사람이 곧 나야

어느 진상고객의 개과천선(改過遷善) 이야기

“아니 김치를 00일 날 시켰는데 무슨 배추를 키워서 보내는 거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오늘도 고객들의 짜증이 가득한 배송 문의가 들어옵니다. 최근 국산 김치 수급이 어려워 배송일정을 평소보다 늦게 설정을 했더니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의 원성이 고객센터로 쏟아집니다. 오픈마켓에 입점을 해서 판매를 하고 있는 입장이라 즉시 답변을 하지 않으면 벌점을 받기 때문에 바로 답글을 남깁니다.


주문번호를 확인하니 고객이 말한 주문한 날은 실제 주문한 날과 달랐습니다. 그리고 배송일정도 아직 이틀 정도 남아 있습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 당장 취소를 하라고 답글을 남기고 싶지만 이 어려운 코로나 시절에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오른손을 왼쪽 심장 위에 놓고 한숨을 크게 쉬어 봅니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하고 고객 문의 게시판 댓글에 답글을 남깁니다.



“고객님은 2020-00-00.06:54:33에 주문하셨습니다. 주문하실 시점에 분명히 2020-00-00에 출고한다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고객님이 주문하실 시점에 김치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출고 예정일을 00월 00일로 기재해 놓았습니다. 고객님 주문 건은 약속드린 대로 출고할 예정입니다. 아무리 저희가 판매하는 입장이라도 고객님께서 주문내역을 확인하시고 비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약속을 못 지키면 저희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저희가 약속드린 대로 주문 건을 준비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댓글을 써 놓고 한참을 읽고 또 읽어 보았습니다. 혹시나 내가 고객에게 기분 나쁜 단어나 문장을 사용하지 않았나 천천히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저장’버튼을 클릭했습니다. 저장하고 보니 그냥 죄송하다고 말할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따박따박’ 댓글에서라도 말하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올라 오늘 일정은 망칠 것 같습니다.


필자가 열심히 팔고 있는 김치의 대표이미지(*주의:광고 아님)


작은 잘못에도 乙은 무조건 죽을죄


예전 광고 자재업체에서 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납품 전화가 오면 현수막이나 출력 자재들을 화물 승합차에 싣고 시내 곳곳을 배달했습니다. 주문이 밀리거나 차가 막히면 제시간에 배달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고객은 전화가 와서 재촉을 했고, 무거운 물건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면 야단을 치고 때론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 주문받은 물건을 창고에 옮겨 놓고 조용히 그 장소를 빠져나왔습니다.



한 대형거래처 사장님은 성질이 괴팍하기로 유명했습니다. 배달 차량에서 수레로 옮기는 과정에서 물건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해서 1층에서 3층 창고까지 2시간 넘게 계단을 걸어서 물건을 옮긴 적도 있습니다. 평소처럼 엘리베이터를 사용했으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배달을 끝내고 성질이 괴팍한 사장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한번 사과를 했습니다. 다시는 물건을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그 거래처를 나오며 함께 간 직원에게 끊었던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웠습니다.




나도 한때는 '진상'고객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탓에 이제는 익숙할 만한 대도 고객들의 불만 섞인 욕설을 들으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는 그렇게 쉽게 잊히던 것들이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좀처럼 잊히지 않고 아직까지 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도 대기업에 근무할 때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야단을 친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택배기사님들에게 재촉 전화를 했습니다. 사소한 문제에도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괜한 시비를 걸며 상담원들을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마트 점원들에게 생트집을 부리며 부당한 고객서비스를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같은 ‘진상’으로 인해 협력업체 직원과 택배기사님, 통신사 상담원, 마트 점원분들 중 누군가의 마음에는 아직까지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고객에게 욕설을 듣고 거래처 사장님에게 야단을 맞으며 입었던 그 상처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내가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들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이며, 내가 곧 그 사람입니다. 내가 갑(甲)인 동시에 을(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주문한 상품의 배송이 늦어도 택배기사님에게 전화하지 않습니다. 택배 어플로 조회하면 됩니다. 스마트폰이 문제가 생기면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 보거나 통신사 홈페이지에 직접 접속해서 해결합니다. 어떤 매장을 가든지 들어가고 나올 때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그것이 오랜 기간 ‘진상’으로 살았던 제 자신에 대한 참회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에 내재되어 있는 있는 권력의 속성을 들어내야 한다. 그게 공동체 사회의 바람직한 길이다.


직업이 권력이 되는 세상은 이제 그만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직업에 귀천은 분명 존재하고 어떤 경우에 직업은 권력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국가시험을 거부하고 뒤늦게 재시험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있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여성을 강제추행해도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내리는 특권을 가진 검사라는 직업도 있습니다. 직업이 권력이 되는 세상은 사라져야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갑과 을의 위치로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세상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직업과 계약관계 이전에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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