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너무 쉽게 소비한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은 뉴스 속보보다 빠른 속도로 sns나 각종 매체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그에 대한 반응도 성급하게 이루어진다. 고인의 마음이나 상황보다 어떻게 죽었는지부터가 궁금하고,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를 경솔하게 추측하거나 비판한다. 자신들의 경험과 비슷한 이슈들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고통을 동일시하여,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고통은 온전히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고인이 남기고 간 흔적이 단면을 보여주고, 단편을 말해준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이면의 무게와 깊이는 그 누구도 함부로 측정할 수 없다. 모두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요즘 사회가 너무 빠르게 반응하고 감정마저 소비하는 시대이기에 많은 이들이 그러는 것 같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고인의 삶과 죽음을 경외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다루고 그 고통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삶과 그가 겪어온 고통을 진지하게 존중하고 애도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고인의 아픔에 대해 주제넘게 해결책을 찾거나 속단하려 하기 전에, 그 고통에 경의를 표하고 진심으로 애도하는 태도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저마다 다른 듯 같은 소리를 낸다.
그럴 용기면 못 할 게 없을 거라고.
그럴 정신이면 충분히 살고도 남았을 거라고.
그럴수록 보란 듯이 더 잘 살아야 했다고.
아무려면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좋겠느냐며,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살아내야 했다고.
그때만 잘 넘기면 분명 좋은 날이 있었을 텐데.
집값만 떨어지겠다며. 민폐가 따로 없단다.
모녀가 그걸 몰랐을까.
그들도 모르진 않았을 거다.
그래서 숱한 날을 살기 위해 버티고 소원하며 이겨왔을 것이다. 그 삶의 끄트머리 끈을 놓아버리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간절했을 게 분명하다. 살고 싶었을 거다. 너무너무 살고 싶었을 거다. 입버릇처럼 죽겠다던 사람도 요단강 앞에서는 살려달라 애원한다는데 산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고 싶지 않을 것인가. 살 수 없어서 살지 못했을 뿐, 막무가내로 살기 싫어서 죽고 마는 사람은 있지 않을 것.
"기초생활수급자..."
얼마나 질기고 힘들었을지. 얼마나 억세고 고통스러웠을지. 얼마나 끈덕지고 괴로웠을지. 얼마나 고단하고 또 고적했을지… 그러기까지는 또 얼마나 무서웠을 것이고 그러고 싶지 않아서는 또 얼마나 울어 삼켰을 것인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현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는 건 아니지 않아요? 어떻게든 먹고 살 연구를 했어야지."
모녀가 그걸 몰랐을까.
그들도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쳤을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끝내 어떤 마음으로 눈을 감았는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