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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하 Jun 06. 2024

건강한 신체에 글감은 깃들지 않는다

 나는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글쓰기 수업 과제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나를 혼내는 것은 아니다. (속이 터지겠으나 절대로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오히려 젠틀함을 유지하시는데 사실 그게 더 무섭다.) 보다 근원적인 공포는 마감 때문이 아니다. 그 공포는 바로, 무엇을 써야 할지 망설이다 글을 점점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과제 마감은 일요일 밤 12시였다. 주말에 특별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바쁜 한 주를 보내고도 글을 쓸 시간은 충분했다. 다만, 글감을 정하지 못한 채 한 주를 보내버린 게 문제였다. 무엇을 쓸지 계속 고민했다면 좋았으련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생각을 게을리하다 보니 순식간에 주말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변명하자면, 글쓰기를 잊고 봄날을 즐기기 위해 집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척 경건한 몸가짐으로 집에 꼬박 붙어 있었다. 다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떠올라, 글을 쓰기 전에 우선 집안을 정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휴일 꼭두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평상시 빨래 양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온 방의 이불 커버를 벗겨 세탁기에 넣었고, 청소기 돌리기와 걸레질에 이어 화장실 청소도 끝냈다. 평소 요리를 극한 노동으로 여기고 멀리 하던 내가 찌개를 끓였으며, 먹지도 않던 반찬까지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날이 따뜻해지면 언젠가 나타날 초파리를 미리 상상하며 하수구에 끓는 물까지 콸콸 들이부었다.      


 더없이 깔끔해진 환경에 만족하며 모니터 앞에 앉아 자세를 가다듬었는데, 지난 한 주를 찬찬히 거슬러 보았으나 딱히 인상적이었던 일도 영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분주히 출근했다가 퇴근 후 허겁지겁 저녁 식사를 마치면 곧장 잠들었던, 생존에 충실했던 일주일이었다. 얻은 것이 하나는 있었다. 살! 그렇다면 ‘야식과 몸무게의 상관관계’에 대해 써 볼까? 급할수록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아야 할 것 같아 친구의 추천도서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를 펼쳤다. 읽다 보니 꽤 재미있어서 계속 읽으려는데 웬걸, 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라 잠이 쏟아졌다. 어쩔 수 없었다. 글은 맑은 정신일 때 잘 써질 테니 우선 침대로 향했다.     


 눈을 떠보니 저녁 6시였다. 마감까지 6시간 남았다. 조금씩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점심을 먹자마자 잠을 잤으니 살이 더 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또한 글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글쟁이가 다 된 건가?’ 싶어 흐뭇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우선 모니터 앞에 앉아 손가락은 자판에, 눈은 소설책에 둔 채로, 어쩌면 혹시 다른 신선한 글감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며, 마치 영어 수업 시간에 영어 교과서 아래 몰래 깔아둔 수학 문제집을 푸는 잔머리 대마왕 학생처럼 쉬지 않고 다른 생각을 이어갔다. 인간은 본래 멀티 태스킹을 못한다지만 혹시 나는 가능할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그 결과, 나는 마감 다음날인 지금까지 ‘야식과 몸무게의 상관 관계’에 대한 글은 한 자도 쓰지 못했고, 그 이유에 대해 이토록 길고 구질구질한 변명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 깨달은 것도 있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해도, 생각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한 몸에는 글감이 저절로 깃들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다이어트에 대해 지치지 않고 생각했다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 몽롱하게 보낸 시간이 아까웠다. 글쓰기야말로 고도의 두뇌 회전을 요구하며, 인간과 동물을 뚜렷이 구분 짓는 활동임을 이제야 깨닫고 만 것이다.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정여울 작가는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효율적으로 글 쓰는 시간을 버는 방법으로 ‘언제든 새로운 글을 쓸 마음의 예열 상태를 유지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니 나도 이제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고, 꾸준히 사유하는 생활을 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다 보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며 겁에 질리기는 커녕,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무엇부터 먼저 써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부디, 그 날이 내게 꼭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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