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업한 모의고사 지문 중 운동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직장 일과 가정 일을 병행하는 꽉 짜인 하루 일과에서 운동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은 계속되는 도전(continuing challenge)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집안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니, 차라리 그때 간단한 운동을 함께 할 것을 권했다. 이를테면 설거지를 하면서 스쿼트를 한다거나, 아침에 물을 끓이는 동안 벽에 대고 푸시업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그건 많이 들어본 조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Easier said than done.”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말은 쉽다. 하기 싫은 게 문제지. 집안일도 최대한 미루다 온갖 기계의 힘을 빌리는 판인데 그 와중에 내 몸을 더 힘들게 하라고? 나도 이럴 진데, 인생의 쓴맛을 조금씩 느끼며 부정적 사고가 수시로 일렁대는 사춘기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겠나? 안 봐도 뻔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할 것인가. 나는 비뚤어질지언정 그들이 삐딱해지는 것은 싫다. 수업 내용으로 교실 전체에 냉소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못해도 어쩌면 그들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관련 자료를 검색했다. ‘생로병사의 비밀’ 류의 영상은 차고 넘치니 어렵지는 않았다. ‘생활 속 운동’을 검색하자, 습관을 바꾸어 30킬로그램을 감량했다는 사람의 일과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타났다.
영상 속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은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긴 막대 걸레를 들고 거실에 들어섰는데, 밀대를 밀 때마다 다리를 런지 자세로 바꾸었다. 넓은 거실을 걸레봉과 런지의 현란한 조합으로 닦은 그녀는 잠시 후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릇을 헹구면서 아래위로 앉았다 일어서며 스쿼트를 했다. 그뿐인가. 식탁을 닦으면서도 뒷발차기를 계속했다. 킥백이라고 했던가. 모든 것이 고요히 자리를 지킨 정적인 실내에서 그녀의 동적인 동작이 반복됨에 따라 집은 점점 반짝거렸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 갑자기 운동 자세를 취하는 그녀의 모습이 약간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 덕분에 수업 분위기는 영상을 보며 부드러워졌다. 장난기 있는 학생들이 ‘저러다 설거지는 언제 끝내요?’라며, ‘차라리 빨리 집안일을 마치고 운동을 하지!’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모두가 공감한 부분은 있었다. 3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감량하기까지 다른 노력도 더해졌겠으나,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동작의 꾸준한 반복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으며, 어쩌면 그녀는 그 모습을 계속 유지시키리라는 것 말이다. 결국은, 꾸준함이 핵심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시도를 하고 살아왔다. 한 해를 시작할 때마다 희망에 부풀어 온갖 다짐을 했다. 의지는 약하나 의욕은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온갖 온라인 모임을 찾았다. 영어 원서 읽기 모임, 주 3회 운동 및 식단 인증 사진 모임, 벽돌책 읽기 모임까지! 가입은 늘 야심 차게 했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인증샷을 올리지 못해서 무수히 강퇴를 당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탈퇴 버튼을 눌렀다. 잘리기를 기다리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였다.
연말이 되며 한 해를 돌아본다. 올 한 해 내가 꾸준히 한 것은 정말 없었던 것일까. 애써 생각해 보면 있긴 하다. 비록 TV 프로그램의 그녀처럼 격한 동작은 아닐지라도, 20년 넘게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듣는 EBS 라디오 영어방송, 일어나서 마시는 찬물 두 잔 같은 것들. 둘 다 잠을 깨려고 무의식 중에 시작한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몽롱한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기 전 마신 두 잔의 물은 몸을 가뿐하게 했고, 귀에 들어온 수많은 영어의 일부는 나의 것이 되었다. 꾸준함은 어느 순간 힘이 되었다.
이날 읽은 모의고사 지문은 단순히 운동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함에 대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이번엔, 일상에 다른 습관을 더하고 싶어졌다. 흘러가는 시간 속의 날짜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밀도 있게 쌓아 올린 그 숫자는 훗날 내가 충일한 삶을 살아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그러니 내년이 시작되면 1월이라는 새 숫자에 또 다른 습관을 곁들여보겠다고, 실천해 보겠다고, 꾸준함으로 내게 자리 잡게 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