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눈이 펑펑 쏟아진 날이었다. 11월의 함박눈은 상상도 못 한 터라 전날 일기예보를 보고도 믿지 않았다. 새벽에 남편이 정말 눈이 내렸다고 했을 때, 나와 딸아이는 각기 다른 이유로 번쩍 눈을 떴다. 험난한 출근길을 예상한 나는 심란했고 눈밭에서 뒹굴 생각을 한 아이는 들떴다. 주차장을 내다보니 밤새 눈을 소복이 맞은 차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로 1시간 넘게 걸려 출근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복잡한 내 속을 딸아이가 알 리가 없었다. 아이에게 눈은 단조로운 일상에 갑자기 내린 선물과도 같았다. 그래서 온갖 출근 경로를 탐색하고 있는 내 앞에서 ‘내일도 대설 특보래요!’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어지러이 요동치는 내 마음은 아랑곳없다는 듯 계속해서 야단법석인 아이를 보니 갑자기 울컥, 화가 치솟았다.
“엄마는 눈이 많이 와서 운전도 못 하고, 버스에 지하철까지 몇 번을 갈아타고 출근할 생각에 심란한데 왜 자꾸 신난다고 하는 거야? 엄마 지금 스트레스받은 거 안 보여? 너는 그렇게 공감 능력이 없어?”
말을 뱉는 순간 아차 싶었다. 하지만 나는, 눈만 아니었다면 부드럽게 시작되었을 내 하루가 눈 때문에 덜컹대며 시작한 것이 더 속상했다. 그래서 무안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두고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험난한 과정 끝에 도착한 학교는 온통 새하얬다. 창문 너머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던 학생들은 빨리 수업을 끝내 달라고 애원했다. 서둘러 수업을 마치고 나가니 운동장은 순식간에 아이들로 가득 찼다. 양동이와 쓰레받기를 위시한 온갖 도구도 사방을 떠다녔다. 눈을 만끽하는 학생들의 함성과 폭소와 비명이 폭발하고 섞였다. 그들이 분출하는 에너지에 내 마음도 벅차오르던 그 순간, 아침부터 느닷없는 나의 신경질에 어쩔 줄 몰라하던 딸아이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굳이 화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유독 내 아이에게 냉정한 걸까. 이것은 아이를 키우며 반복적으로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친절한 말투의 반만이라도 딸아이에게 쓴다면 좋으련만.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를 고등학생 대하듯 할 때도 많았다. 눈 내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이 눈이 왔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야? 엄마는 힘든데?’
아이에게 독한 말을 던졌던 나는 단 몇 시간 후, 내 아이보다 두세 살 많은 고등학생 아이들 수백 명이, 이성의 끈을 모두 놓은 채 눈 덮인 운동장을 질주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번에도 나는 내 아이를 너무 큰아이 대하듯 했다는 것을, 지나치게 차가웠다는 것을.
눈 오는 날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저녁 늦게까지 나를 기다리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창고에서 꺼낸 썰매를 한 팔에 끼고 이미 깜깜해진 놀이터로 나가곤 했다. 눈밭을 빙글빙글 돌며 아이를 태운 썰매를 끌어도 팔이 아픈 줄 몰랐다. 양 볼이 새빨개지도록 추운 겨울밤 함께 눈을 만지고 놀았던 그날을 아이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11월의 폭설은 나에게 알려줬다. 아이는 아직 순수한 감성을 지녔다는 것. 쏟아지는 눈을 나와 함께 즐기고 싶어 했다는 것. 아침부터 아이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나서야, 고등학생들의 광란의 눈맞이 광경을 보고 나서야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던가. 오늘은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네야겠다. 머리가 찡할 정도로 추운 겨울날이면 싱크대 앞에 동그랗게 앉아 둘이 함께 마시던 핫쵸코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