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

by 이지하

몹시 어수선했던 한 주였다. 올 한 해 일어난 여러 일을 떠올려 봐도 이번 주만큼 연달아 분노한 적은 없었다. 마음을 잡을 만하면 이어진, 뒷목을 뻐근하게 하는 사안에 심신이 피폐해졌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낼 때는 언제인가. 남들도 나와 비슷한 강도로 격분할까. 나라는 인간만 유독 이런 상황을 못 견디는 것일까. 다음은 지난 한 주간 나를 화나게 한 일이다.


동학년 담임교사가 조모상을 치르고 출근했다. 그간 학급에서 연달아 일어난 학폭과 선도 사안으로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그는 할머니를 보내드린 슬픔이 온몸을 지배하는 와중에도 폭주하는 반을 차분히 만들고 싶었다. 이에, 기말고사 전 며칠간 점심시간 20분 자습을 제안했다. 상황은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한 학생은 번쩍 손을 들어 ‘학생의 휴식권’을 주장했고, 일부 학생은 교실 밖을 맴돌았다. 종례 시간에 해당 학생 6명을 호명하며 잠시 남도록 한 교사의 말을 듣고도 아이들은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느닷없이 계엄령이 선포되었던 밤, 얼마 후 남편은 회사의 연락을 받았다. 환율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비상이 걸린 탓이었다. 밤 11시에 급히 집을 나선 그는 밤샘 근무 후 이튿날 새벽에 귀가했고 세 시간 후 다시 출근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의 직장 동료는,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은 그가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남편은 119 대원의 응급조치 후에야 의식을 찾았는데도 다음 날 출근했고, 점심시간에 찾아간 병원에서 출혈과 함께 두개골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입원했다.


토요일 오전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가 있었다. 나흘 간의 대혼돈에 대한 발언 시간은 유튜브 숏츠 영상만큼 짧아서, 사과와 송구스러움을 포함한 몇 개의 문장이 문득 나타났다 사라졌다. 같은 날 오후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 앉아 뉴스를 보았다. 칼바람을 맞으며 국회 주변을 뒤덮은 인파와, 여당 국회의원들이 일제히 퇴장하고 휑해진 회의장의 모습이 둘로 나뉜 화면에 잡혔다.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완벽히 다른 신념으로 뭉친 두 세계가 동시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내 안을 파고 들어와 마구 뒤섞이고, 엉키다 폭발했다.

견딜 수 없이 분노하면서, 나는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나를 가장 참을 수 없게 하는지 생각했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돌아온 담임교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교사의 제안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손을 들고 휴식권을 말한 학생과,

잠시 남으라는 말에도 그 자리를 떠난 학생들,

계엄령이라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혼란을 불러왔음에도

마치 그 일은 프로야구 시구 정도의 가벼운 이벤트였다는 듯

캐주얼한 사과 몇 마디를 끝으로 자리를 뜬 대통령과,

투표하라는 들끓는 민심에도 눈과 귀를 막은 채 절차를 무시하고 회의장을 걸어 나간 국회의원들.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가볍게 여겼다. 무시했다. 함부로 대했다. 한 명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대상화했다. 내 앞에 있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오만하고 가벼운 태도가 불러온 모든 상황이 교사를 상처받게 했고, 영문도 모르고 소집되어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던 군인들을 자괴감이 들게 했으며, 야근한 남편을 다치게 했고, 국민을 격앙하게 했다.


한 주가 지난 지금도 내 안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미성숙한 행동을 한 학생에게는 훈계와 상담이 이어졌다. 아직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통해 바르게 성장할 있는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 그러니 첫 번째 사안의 분노는 해소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과연 변화가 일어나긴 할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가, 그들이, 어떤 순간이든 누구를 상대하든 마주할 이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길 바란다. 처단이나 척결과 같은 살벌한 용어의 대상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자가 무심코 던진 말의 결과로 자리에 누운 남편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어서 이 어지러운 시기가 끝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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