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기쁨

by 이지하

2024년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특별히 한 일도 없이 보내버린 시간에 허무함이 몰려들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여전히 아쉽고 서운하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과 마음 깊이 차오르는 충만함이 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작년과 다른 점은, 올해 꾸준히 글을 썼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올해 초 최민석 작가의 강의를 듣고 나면서부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한 수업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과제로 써온 글을 함께 읽을 때면 강의실 어딘가에 앉아 있을 글쓴이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미 출판된 작가의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펄떡이는 생생함이었다.


종강 자리에서 누군가 용기 내어 작가님께 추후 수업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같은 마음인 이들이 모여 수업이 재개되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날 때면 다음도 함께 할지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기뻐했다. 진득하게 무언가를 하는 데 취약한 내가 어쩌면 수업을 가장 먼저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글 쓰는 즐거움은 그보다 컸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쌓여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주 1회 에세이 쓰기를 1년 가까이하면서 나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변화의 정도는 아주 미세해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글쓰기로 인해 서서히 바뀐 내면의 세계는 운동이나 악기 연주 실력처럼 남들이 눈으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좋다. 혼자만 알아차리고 킥킥 웃는 즐거움이 있다.


우선, 주변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자유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무엇이든 글감으로 떠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업에 들어가면, 어떤 학생이 전날 이발을 하고 왔는지는 물론, 지난번과 다른 디자이너에게서 머리를 한 것을 알아챌 정도의 눈썰미가 생겼다. 그럴 때마다 주고받는 대화로 친밀감 또한 깊어졌다. 관찰력은 집요함이 되어, 평소보다 부쩍 짧아진 학생의 손톱을 본 후 ‘손톱 뜯기 감시 모임’과 같은 학생 친목 모임을 모집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일상이 훨씬 재미있어졌다.

둘째로, 독서의 범위가 다양해졌다. 이전까지 현실 도피와 즐거움 추구를 위해 문학에 치우친 독서를 했다면, 올해는 인문학 분야로도 영역을 넓혔다. 그동안 쓰고 싶었던 웬만한 소재를 다 쓰고 나니 어느 순간 텅 빈 순간이 찾아와, 양질의 콘텐츠를 내면에 채워 글감으로 길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중하게 고른 책을 더 꼼꼼히 읽었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발견하면 기록했다. 당장은 무용해 보이는 이 일이 조금씩 인생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예전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은 휘리릭 손가락만 움직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 쓴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텅 빈 노트북의 화면을 보면 아득하다가도, 또닥또닥 쓴 문장을 다시 써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마음은 차분해지고 없던 사고력도 생기는 기분이다. 일 년 가까이 이 생활을 계속해보니, 별생각 없이 지냈던 과거에 비해 차분하게 사유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달라진 점은 남편이 알려준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로 인한 최대의 수혜자는 우리 가족인 것 같다. 남편 말로는 내가 글쓰기를 하며 예전보다 표정이 밝아지고, 짜증이 줄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화가 많았나?) 글을 쓰기 위해 주말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통에 거실에서 잔소리하는 시간의 절대량이 줄어들어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글쓰기를 통해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충일한 시간을 누렸기 때문이 아닐까. 직장 생활과 가정 일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오롯이 내 즐거움만을 위한 시간 말이다.

글쓰기는 이렇게 나를 달라지게 했다. 성취감과 충만함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쓰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그러니, 나만 경험하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이 감정을 모두가 느껴봤으면 좋겠다.



(글 제목은 편성준 작가님의 '읽는 기쁨'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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