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지막 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나보다 먼저 잠자리에 든 남편과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다. 아니, 알았다 해도 이유는 모를 것이다. 설사 짐작했다 한들 틀렸을 것이다. 방학이라 다음 날 늦게 일어나도 되니까, 아니면 새해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에 일부러 잠을 쫓았을 거라 생각했겠지.
다 틀렸다. 나는 한 달 전 계엄령이 내렸던 그 끔찍한 날에도 잠은 잤다. 이십여 년 전 쌩쌩한 체력을 자랑하던 시절, 한창 유행하던 일명 ‘밤도깨비 여행’을 가자던 친구들의 제안도 거절했던 나다. 나에게 잠이란, 정해진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180도로 몸을 쭉 편 자세를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해야 하는 거룩하고 진지한 의식이었다.
그러던 내가 밤샘을 한 까닭은 이러하다. 그날 저녁 여느 때처럼 휴대폰으로 즐겨 찾는 커뮤니티를 들락날락하던 중, 평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한 회원이 본인도 모르는 이유로 강퇴를 당했다는 글을 읽었다. 회원들 간에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온갖 사연을 주고받던 정든 공간이 자칫 폭파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격앙되었다. 나 또한 심각해져서 이런저런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희붐하게 날이 밝아온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도 있다지만, 내 나이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게임을 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는 학생과 나는 다를 바가 없었다. 온라인 세계에 집중하다 현실 세계에서 수면 부족의 좀비 상태가 된 것이다. 누군가 동해 바다를 보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때, 나는 깜깜한 방에 누워 휴대폰 속 세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화면이 내뿜는 빛에 눈이 타들어갈 듯한데도, 개미만큼 작은 글자들이 자글자글 성나게 움직이는 것을 밤새 지켜보고 있었다.
몽롱한 상태로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온라인 상의 자아가 오프라인 상의 자아를 넘어서서는 안 되었다. 일상이 흔들릴 정도로 온라인 세계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했다. 이쯤 되면 인터넷 커뮤니티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그 안에서 주고받았던 치열한 토론 속에서 각자 중요하다고 설파하던 가치는 차치할 일이었다.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고민은 엉뚱한 곳에서 해결되었다. 어머니, 딸아이와 나, 삼대가 함께 떠난 여행 덕분이었다. 계획한 일정에 따라 촘촘하게 움직이기 위해 온 정신을 여행에 집중했으며, 한정된 데이터의 유심칩으로 여행 정보만 찾았다. 일정이 끝나면 숙소에 돌아와 바로 잠이 들었다.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했지만 거리를 두었다. 글을 다 읽고 자기에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여행지에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잠시 잊고 싶기도 했다.
나흘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돌아와 그간 못 읽은 커뮤니티의 글을 찬찬히 읽자니 너무 많았다. 잠시 망설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휴대폰을 붙잡고 있느라 놓쳤던 새해 첫날 새벽에 비해, 탄탄하게 보낼 수 있을 일상이 보였다.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하늘도 볼 수 있을 수많은 날이 보였다.
아이를 출산할 무렵 가입한 온라인 세계는 내게 일종의 숨 쉴 공간이자 해방구였다. 외출도 못한 채 육아를 하며 겪는 고충을 인터넷상에서 마음껏 털어놓고 공감하며 울고 웃었다. 십 년이 넘도록 마음을 준 그 공간이 소중했던 만큼, 갑자기 일어난 갈등 상황에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널뛰는 감정으로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휴대폰 화면을 끄고 나니 다글거리던 화면 속 세상이 사라졌다. 순간,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에서 만나 내적 친밀감을 느꼈던 익숙한 닉네임들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헛헛한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했지만 차마 탈퇴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가상 공간이지만 그 곳은 한 번의 클릭으로 지울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온라인 상의 그들과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느낀 연대감과 수시로 받았던 진한 위로는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오늘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온라인 속 세계가 아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것, 화면상에서 번쩍하고 사라질 글자가 아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 위의 글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러니 올해는 달라지고자 한다. 밤을 꼬박 새운 그 일이 새해를 맞이한 새벽에 일어났다는 점도, 그래서 더 공교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