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범수에게

by 이지하

아침부터 부리나케 미용실에 다녀왔다. 뿌리 염색을 하기 위해서다. 염색이 피부에 좋지 않다니 방학 동안만이라도 그대로 두기로 마음도 먹었었다. 그런데 이마 가장자리부터 슬금슬금 올라오는 흰머리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란 것을 보자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존의 검은 머리카락에 이어 자란 흰머리가 만든 또렷한 흑백 대비가 영 마음에 걸려서였다.


평소 친구들과 만날 때는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던 내 흰머리를 유독 의식하고 미용실에 다녀온 이유는 내일 20년 전의 제자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마지막으로 만난 때가 8년 전이었다. 시간은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공평하게 흘렀을 테다. 그런데 왜 나는 아침부터 염색을 하겠다고 안달복달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내일 만날 제자가 아닌, 오래전 다른 학생과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 학생의 이름은 범수다.


때는 2012년 여름, 출산과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첫날이었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을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교무실에 들어섰다. 얼마 후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갔다. 그러던 중 범수가 왔다. 나의 애제자 범수. 범수는, 나를 보자마자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왜 이렇게 늙으셨어요!”


범수는 평소에 무척 예의 바르고 순수한 학생이었다. 그러니 그 말은 나를 놀리려는 것도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관찰하고 느낀 바를 투명하게 표현했을 뿐!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었던 2년간의 고된 육아를 마친 내 얼굴이 오죽했겠는가. 다만, 나만 혼자 느끼고 있던 것을 눈앞에 있는 학생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나를 보고 경악한 범수보다 범수로부터 받은 내 충격이 더 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제자와 만날 약속을 잡으면 유난히 거울 속 내 얼굴을 더 살피게 된 것 말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트라우마라는 걸까? 내가 젊음으로 반짝이던 시절을 기억하는 제자가 세월이 훌쩍 흘러 만났을 때 똑같은 말(“선생님 왜 이렇게 늙...”-다시 쓰기도 마음 아프다)을 하지는 않을까 은근 염려하는 것 말이다. 물론, 내일 만날 학생도,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나를 만났을 때 그와 비슷한 어떤 말도 한 적이 없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이 마냥 싫지는 않다. 가슴은 뜨거웠지만 좌충우돌했던 20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 당시 나는 상상도 못 했던 40대의 나, 관록이나 연륜이 언뜻 배어나기도 할 법한 지금도 소중한 순간이니까.


그러므로 이 글은 13년 전 나를 늙었다고 한 범수에게 뒤끝을 보여주고자 쓴 것이 아니다. 범수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저 솔직했을 뿐! 시대를 앞서 ‘팩폭’을 했을 뿐이다. 그 이후 내가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20년 전 중학교 1학년이었던 제자를 만날 내일을 생각하며 들뜬 마음으로 염색을 하고 돌아와서 기분 좋게 쓴 글이다.


범수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래도 2012년으로 돌아간다면 범수에게 ‘사회적 눈치’와 ‘선의의 거짓말’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 알려주고 싶다. 그럼 범수는 어디서든 더 사랑받을 텐데.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범수는 잘 지내고 있을까? 범수가 보고 싶다. 반복해서 쓰지만, 나는 정말 범수에게 뒤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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