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예보에 따르면 올겨울은 예년보다 포근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외출보다는 집에 콕 박혀 온몸에 담요를 돌돌 감고 지냈다. 겨울의 묘미는 따뜻한 방구석에서 귤을 까먹으며 뒹굴거리는 데 있으니까. 그러던 지난 주말 남편이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했다. 새로 옮긴 직장 일대도 구경시켜 줄 겸, 자신이 잠시 회사에 들러 일하는 동안 나는 근처에서 자유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데이트인가 강제 운동인가. 어쨌거나 나는 서둘러 남편을 따라나섰다.
회사 건물로 들어가는 남편에게 손을 흔든 후 향한 곳은 근처의 백화점이었다. 평소 백화점을 자주 가지 않는 나는 간만에 설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느껴지는 호화로움과 고급스러운 향기에 눈과 코가 호강하는 기분이란! 홀로 돌아다니자니 어색했지만 각 층을 꼼꼼히 다녀보기로 했다. 걸음 수마다 포인트를 준다는 앱도 열심히 작동 중이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앱테크 중인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너무 격하게 돌아다닌 탓일까. 실내가 문득 덥게 느껴지고 발걸음도 서서히 느려졌다. 잠시 쉬기 위해 눈에 보이는 벤치를 찾아 앉은 채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는 그들과 나의 차이점을 알아차렸다. 언뜻 보아도 20년은 훌쩍 뛰어넘을 법한 나이 차는 당연하고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코트를, 나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다는 거였다.
모처럼 백화점을 찾아 한껏 차려입은 것일 수도 있었다. 자차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겉옷 선택이 각기 다른 것처럼. 하지만 내 최초 목적지가 백화점이 아니라고 해서 후줄근하게 입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 옷차림만 홀로 시베리아에서 온 듯했다는 점이 달랐다. 건물 밖을 나와 둘러봐도 역시 코트를 입은 사람이 더 많았다. 그날은 그냥 포근한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난 두 달간 나는 친절한 일기예보에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두툼한 패딩만 입었다는 사실을.
‘얼죽코’라는 말이 생긴 게 언제였던가.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멋을 포기하지 않고 코트를 입겠다는 단호한 표현에 맞장구치던 나였다. 사람인가 공작새인가 싶게 여러 벌의 코트를 부지런히 돌려 입던 게 불과 1년 전이었다. 그러던 내가 올겨울엔 한순간의 오싹함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외출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온몸을 감쌌다. 날렵한 디자인이지만 신을 때마다 발이 시렸던 앵클부츠도 멀리 했다. 두툼하고 푹신한 운동화만이 믿음직스러운 선택이었다.
이미 내 생활에 서서히 스며들었는데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뿐, 얼죽코의 종말은 그렇게 왔다.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가수들만 출연했던 열린 음악회에 내 십 대를 함께 한 가수들이 나온 것을 본 날처럼, 미용실에서 대충 넘겼던 주부 잡지의 기사가 갑자기 알차고 재미있게 다가온 날처럼, 나이가 들며 나와 내 주변은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생활의 소소한 변화는 웃으면서 넘길 일들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금씩 약해질 몸의 이곳저곳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다. 어쩌랴. 한 시기의 끝을 서운해하지 않고 보내주며 새로운 단계를 담담히 맞이할 수밖에. 예쁘지만 무거웠던 가방을 뒤로한 채 ‘가방은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며, ‘양손이 자유로운 게 최고’라며 배낭을 즐겨 메는, '신발은 무조건 편한 것이 최고'라며 운동화를 신고 하루에 만 보 이상 걸으며 서울 곳곳을 누비는 나의 엄마처럼 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나의 취향도, 마냥 익숙할 것 것 같았던 내 주변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즐거움이 있다. 모든 것이 정지된 채로 있었다면 그 또한 지루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맞이한 얼죽코의 종말이 나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