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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온 Feb 05. 2024

포르투갈에서 언니 사진을 들고 다녔다.

From Lisbon to Busan

혼자 하는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친언니의 영향이 크다.


언니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세계로 여행을 다녔다. 베트남 종주를 하고 스리랑카에서 한 달을 살고. 매번 유행하는 여행지의 대척점을 선택해 모험을 떠났다. 그것도 혼자.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계로 나가 영상 통화를 걸어오면 화면 너머의 세상을 구경했다. 반짝이는 언니의 눈을 보며 여행에 대한 꿈을 키웠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함께 여행 다녔다. 횡단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도 보고 콧물이 얼어붙는 도시에서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여행하기도 했고 어떤 땐 캠핑하러 하루 꼬박 걸려 선착장까지 갔다가 배가 안 떠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언니와 하는 여행은 그곳이 어디든 즐거웠다.


 그렇기에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떠나오면서도 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을 조금 가졌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언니가 여행을 못 가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서유럽땅을 내가 먼저 밟게 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그런 언니와 포르투갈에서 만나기로 했다. 12월 31일에 만나 한 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고 또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로 했다. 나는 종강 후 파리에서 포르투갈로, 언니는 한국에서 포르투갈로. 직장인인 언니는 가장 바쁠 연말연시에 어렵게 10일의 휴일을 얻어냈고 비행기까지 결제했다. 자매 상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재실행.


 실행을 중지했던 해외입국자 10일 자가격리가 오미크론 확산으로 재실행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와 10일 동안 격리를 할 수 없는 직장인 언니는 눈물을 머금고 모든 표를 취소했다.


 소중한 솜사탕을 물에 씻어 먹으려던 너구리처럼 황망했다. 언니 없는 포르투갈이 의미 있을까 싶어 파리에 남을지 혼자라도 포르투갈에 갈지 고민했지만 결국 홀로 포르투갈행을 택했다.


 포르투와 리스본 두 도시 중 첫 행선지인 포르투를 여행하며, 기쁜 순간마다 언니 생각이 났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아름다운 다리 위에서, 노을 밑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언니 생각을 계속했다.


 함께 왔으면 정말 좋았을걸. 분명 나만큼 좋아했을 텐데. 나도 속상하지만 나와는 비교할 수 없게 속상할 언니에게 뭐라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날, 결의에 찬 눈빛으로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혹시 숙소 주변에 인쇄소 있을까요?”


 아주 친절히 로드맵까지 보여주는 주인에게 인사를 한 뒤 인쇄소를 찾아갔다. 그러고는 언니의 사진을 A4 사이즈로 뽑았다. 언니의 SNS를 죄다 뒤져 엄선했다. 붉게 떨어지는 노을을 맞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혹여나 구겨질까 몇 번이나 확인하며 가방에 넣고는 리스본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하여 나의 리스본 여행 주제는 언니였다.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는 커다란 언니의 사진을 들고 리스본 곳곳을 돌아다녔다. 보여주고 싶은 곳마다, 함께 하고 싶은 순간마다 사진을 찍었다.



깜짝 선물을 처음 해보는 사람처럼 떨면서도 알 수 없는 용기가 솟구쳐 낯선 이에게 언니 사진을 들고 있는 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열이면 열 웃으며 흔쾌히 사진 찍어줬다.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알 바는 아니었다. 신박한 방법으로 죽은 언니를 기리는 동생처럼 보였을지도…


늘 목적과 목적지 없는 무계획으로 여행하다가 ‘사진 찍기’라는 목적이 생기니 여행에 생기가 돋았다. 언니가 가장 먹고 싶어 했던 에그타르트와도 찍고 리스본의 알록달록한 벽에 사진을 붙여가며 열심히도 찍었다. 리스본 근교인 신트라와 유럽 최서단 호카곶에 가서도 바람 펄럭이며 찍었으니, 말 그대로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들고 다녔다. 리스본에서 찍은 언니의 사진이 내 사진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그렇게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 3일간의 여정 중 8장의 사진을 엄선했다. 그리곤 언니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언니의 회사 이메일로 메일을 보냈다. 제목은 From Lisbon. 아무 설명 없이 8장의 사진만 덜렁. 이게 뭐라고 손이 덜덜 떨렸다.


정확히 30분 후 From Busan이라는 제목의 회신이 왔다. 어디서 뽑은 것이며, 왜 이 사진을 고른 것이며, 너 사진 찍어주는 외국인들이 언니 기일이냐고 안 물어봤냐는 질문 공세와 한국에서의 사진 몇 개가 첨부되어 있었다.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어 보자마자 울었단다. 그런 말을 하는 언니는 평소에 잘 울지 않는다. 얘를 울렸다니. 성공이군.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쉽게도 언니 기일이냐고 묻는 사람은 없었어. 노을로 유명한 리스본이라 노을 배경으로 찍고 싶었는데 이렇다 할 노을을 못 봤어. 그건 언니가 직접 와야 보여주려나 봐. 꼭 같이 오자. 언니 안 죽었다고 말해주러 가자. 아쉬움을 덜어줄 답을 보내고는 다음 여행지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직접 찍은 리스본 사진. 이 사진을 찍을 때도 언니 사진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한 사람을 어디까지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는 오직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여겨 왔던 생각이 리스본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언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온 시간을 썼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낯선 땅에서 인쇄소를 찾아가고, 낯선 이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고. 혼자임에도 모든 순간 누군가를 떠올리며 행동했던 것.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하기도 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언니(가 인쇄된 종이)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2인분만큼 행복했으니까.


 시간이 꽤 지나고 귀국 후에 재회한 언니의 휴대폰 잠금 화면을 봤을 때, 한 번 더 다짐했다. 꼭 함께 돌아가겠다고. 그때는 내가 언니를 들고 웃고 있는 저 사진 속 배경에서 나란히 웃고 있겠다고. 노을 지는 리스본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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