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삶
주크박스 뮤지컬.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이 개념은 극에 자체 음악이 아닌 이미 잘 알려진 대중음악을 사용한 뮤지컬을 일컫는다. 스토리를 만든 후 그에 맞는 음악을 제작하는 보통의 뮤지컬과 달리 음악이 먼저고, 그 음악에서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故김광석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은 꼭 백 점짜리 정답 같다. 그의 음악에는 이미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두가 공감하는.
<바람으로의 여행>은 1994년 서인대학교의 밴드 동아리를 배경으로 한다. 학교에 입학 후 ‘바람밴드’에 가입한 주인공 이풍세는 동아리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우정을 나누고, 사랑에 빠진다. 그사이에 기쁨이 있고 절망이 있고 슬픔이 있고, 극복이 있다. 주인공 풍세와 바람 밴드 친구들이 방황하고 성장하는 모든 순간이 김광석의 노래로 표현된다.
주인공 풍세가 사랑에 빠질 때는 ‘너에게’를, 가슴 아픈 이별의 순간에는 ‘사랑했지만’을 부른다. 입대하는 장면에서는 ‘이등병의 편지’를, 베이스 영후의 어머니 장례식에서는 ‘어느 60대의 노부부’가 무대를 채운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속에 김광석의 노래가 있다. 전주만 나와도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된다.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광석의 노래는 ‘세월’에 대한 이야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의 음악을 펼쳐놓으면 그곳에 삶이 있기 때문이다.
다소 예상 가능한 전개가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상 가능하다는 것은 보편적이라는 것. 소극장을 채운 다양한 나이대의 다양한 관객들이 한마음으로 보내는 공감의 반응이 <바람으로의 여행>이 12년간 건재해 온 이유를 보여준다. 세대와 상관없이 청춘이라는 세월을 보낸 사람이라면 뻔한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마음을 울리는 노래와 함께라면 더더욱.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라이브 연주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배우들이 직접 통기타와 건반, 베이스 등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무대와 닿을 듯 작은 소극장에 보정되지 않은 날 것의 사운드가 퍼지니 보컬만 라이브로 할 때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다. 김광석도 늘 통기타를 들고 노래했기 때문일까. 김광석이 생전에 소극장 공연을 많이 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그래서 <바람으로의 여행>은 라이브 공연과 경계가 모호하다. 극 중 노래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눈치 보지 않고 손뼉을 치고 손을 흔든다.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관객도 있다. 이를 노렸다는 듯 커튼콜도 특별하게 흘러간다. 보통의 뮤지컬이라면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나서 막을 내리겠지만 인사 후 본격적인 밴드 공연이 시작된다. 극 중에 등장하지 않은 김광석의 명곡들을 차례로 불러주니 좋아하는 곡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관객들은 일어나서 손을 들고 저마다의 세월이 담긴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급기야 김광석을 무대 위로 올린다. 극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AI로 복원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광석의 노래가 아닌 김광석 그 자체를 소극장으로 불러낸 것이다.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만큼 작은 소극장 안에 김광석과 그를 추억하는 이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세월이 겹쳐진다. 그 순간만큼은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다는 노랫말이 무의미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