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 My Real Book Vol.2
재즈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재즈 공연을 좋아한다. 어쩌면 아는 것이 없어서 재즈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 대해 잘 모르는 여행객이 도시와 더 쉽게 사랑에 빠지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에서 호감이 피어나듯 말이다.
재즈를 듣는 동안, 머릿속은 모른다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이다음에 어떤 선율이 나올지, 어떤 악기가 솔로를 이끌어갈지. 심지어는 지금이 전체 곡의 어느 정도까지 온 건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재즈는 같은 곡도 연주자에 따라 다르게 연주된다. 심지어 솔로 연주 구간에서는 팀원들조차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처럼 즉흥성이 강한 재즈는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오직 그 멜로디에. 그 박자 위에.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 My Real Book Vol.2 공연도 그런 마음으로 찾았다. 모든 곡을 알고 있어야 콘서트를 더 잘 즐길 수 있다는 신조에서 재즈 공연은 유일한 예외다. 일단 타이니 오케스터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이었다. 드럼, 기타, 플루트, 색소폰, 트롬본 등 10명의 연주자가 앙상블을 이뤄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시대별 스탠더드 재즈곡을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만의 방식으로 ‘재작곡(Re-composition)’한 음악을 선보였다. 편곡이라는 말 대신 재작곡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도 흥미가 생겼다. 이번에는 또 어떤 무지가 나를 즐겁게 해줄까. 기대감을 안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모른다는 즐거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됐다. 10명의 연주자가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나와 무대를 준비하고, 작곡가 최정수의 짧은 공연 소개 후 첫 곡으로 비밥 재즈의 거장 찰리 파커의 ‘Anthropology’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첫 곡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무대 위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연주자가 있다는 것을. 대신 그의 앞에는 마이크가 있었다. 보컬리스트 표진호는 두 손에 쥔 것 없이 목소리로 연주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를 발견하기 전에도 입을 움직여 목소리를 내고 있었을 텐데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 합주에 목소리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었다. 보컬이 메인이 되는 재즈 무대는 본 적이 있어도 목소리가 여러 악기 중 하나로 인식된 공연은 처음이었다.
보컬의 매력이 극대화된 것은 시대에 따른 재작곡 연주가 끝나고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오리지널 곡 ‘Nach Wien 224’을 연주할 때였다. 표진호 보컬리스트는 가사는 당연히 없고 평소 알고 있던 스캣의 범주도 벗어난, 말 그대로 난생처음 듣는 소리를 냈다. 글자로는 옮겨지지 않는 외계어처럼 들리기도 복잡한 감정을 담은 감탄사처럼 들리기도 이 세상에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혼란과 감격이 마구 뒤섞이던 그 순간, 또 다른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됐다. 오래전 읽은 한 소설과 불현듯 공명한 것이다.
김보영 작가의 SF 단편소설 ‘다섯 번째 감각’은 청각을 잊은(잃은 것이 아니라 잊은) 세계를 그린다. 소리라는 개념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입은 먹을 때나 숨 쉴 때만 움직이는 기관으로 통용되는 세계. 그 속에서 살아가는 ‘듣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귀를 맹장쯤으로 여기며 손으로 소통해 온 주인공은 모종의 이유로 소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처음으로 ‘노래’를 듣게 된다.
소리를 모르는 주인공의 귀에 들어온 최초의 선율. 태어났을 때부터 들었던 비장애인인 나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묘사만으로 충격적이었던 소설 속 그 장면이 떠올랐다. 모르긴 몰라도 주인공이 처음으로 마주한 음악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이토록 낯설고 이상하고 아름답지 않았을까.
소설 속 이야기는 부정하던 청각을 온전히 받아들인 주인공이 사람들과 함께 태어나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끝이 난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주인공은 태어나 처음으로
정적
을 느낀다. 평생 정적 속에 살았으나 소리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정적을 느끼게 되듯이 모른다는 즐거움은 결국 알게 되었을 때만 느낄 수 있다. 알기 전에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새로운 재즈는 듣는 내내 나의 모름을 일깨워준다.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의 공연을 보면서도 나의 무수한 무지를 깨달았다. 이 무지에는 부끄러움보단 새로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앞선다. 이 유례 없는 기쁨을 위해서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