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이 어렵다구요?!

자연 vs 제왕, 그 선택의 기로에서

초여름의 시작과 함께 아기가 찾아왔고,

숨이 턱 막히던 무더운 여름을 지나

코끝이 시릴 만큼 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이제 곧 출산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가 되어 있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우리 앞에 놓인 준비물들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갔다.


아내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필요한 것,

있으면 좋은 것들을 하나씩 적어갔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 낯설기만 했다.


젖병은 다 똑같은 거 아니었나?

근데 사이즈가 제각각.

겉싸개, 속싸개… 이건 또 뭐람?


신혼집을 꾸밀 때

TV 옆에 두고 영화 보자며 샀던 커다란 스피커 자리엔

기저귀 갈이대가 들어섰고,


결혼식 사진이 걸려 있던 자리엔

알록달록 돌아가는 아기 모빌이 매달렸다.


포근하던 거실 카펫은

층간소음 방지 매트로 바뀌었고.


그렇게 우리 둘의 물건은

하나 둘 자리를 내주었고,


그 자리를

곧 태어날 아기의 물건들이 채워나갔다.


없을 땐 몰랐는데,

그 물건들이 채워질수록

현실의 무게가 조금씩, 실감 났다.


'잘할 수 있을까…?'


사실은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 막막함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병원도 점점 더 자주 가야 했다.


2~3주에 한 번이던 진료는

거의 매주로 바뀌었고,

양수량는 괜찮은지,

태아의 위치는 안정적인지,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돌아온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오빠… 이제 아기가 언제 나와도 이상한 게 아니래. 근데 너무 무서워."
"왜? 내가 있잖아. 괜찮아, 걱정 마."
"아니... 진짜 너무 아플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 아플 거야’

‘순산할 거야’

이런 말로는 위로가 안 된다는 걸 잘 알았기에.


"장모님께 한번 여쭤봐. 어떻게 아프고 얼마나 아픈지."
"그래… 엄마한테 물어볼게."


그렇게 전화를 건 아내.

전화가 길어질수록, 표정이 굳어져 갔다.


"엄마. 나 낳을 때 아팠어?"
"당연히 아팠지."
"얼마나?"
"하늘이 노랗게 되지, 그때 나왔어. 너"


전화를 끊자마자

아내는 더 무서워진 얼굴로 말했다.


"오빠… 나 그냥 수술할까?"
"수술? 그건 자연분만이 어려울 때 하는 거 아냐?"
"모르겠어… 그냥 무서워."
"그럼 병원 가서 물어보자."

며칠 뒤, 우리는 병원에 갔다.


아내는 초음파실로 들어가고,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에서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아기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요. 심장 소리도 좋고, 양수도 괜찮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조급하게 물었다.


"선생님, 수술로도 가능한가요? 원하면요."


교수님은 익숙한 듯 웃으며 답했다.


"이맘때 많이들 물어보세요. 자연분만이 어렵거나 위험하면 제왕절개를 권해드려요. 물론 원하시면 수술도 가능합니다. 다만 먼저 자연분만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죠."


그 말에 아내가 빠르게 물었다.


"그럼… 저는 자연분만이 가능한가요?"


교수님은 아내를 진찰대에 눕히고

검사를 진행했다.

잠시 후 자리에 돌아온 교수님은,


“흠… 아두골반 불균형 같아요. 아기 머리와 산모 골반 크기가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되물었다.


"그럼 자연분만은 안 되는 거예요? 전… 자연분만 하고 싶어요."


아플 거라 무섭다고 하던 아내가

마음속으론 자연분만을 원하고 있었던 거다.

교수님은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자연분만 시도는 가능하지만, 아기 머리가 골반에 끼면 그때는 긴급 수술로 전환해야 해요."
"네!?"


우리 둘 다 화들짝 놀라서 눈을 마주쳤다.

교수님은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진통 다 겪고 결국 급히 수술하시는 것보단 처음부터 수술을 선택하는 게 더 안전할 수도 있어요."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럼… 수술해 주세요."


그렇게, 수술 날짜가 정해졌다.


2024년 3월 4일.

우리가 처음 우리 아이를 만나게 될 날.


그리고, 마음속 다짐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모르게

그 눈빛엔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아쉬움, 두려움, 안도감…

나는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냥 꽉.


"덜 아프게 낳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이는 우리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를 거다.

며칠을 망설였고,

몇 번을 병원에 다녀왔는지도.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랬을 거다.

우리의 부모님들도,

어느 날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해야 하지?'

'잘 키울 수 있을까?'


조용히 한숨 쉬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걱정하고,

무서워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이름을 불러줄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게 아닐까.

이제 그 자리에,

우리가 선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