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사 오랬더니 눈물을 사 왔네?

울어버린 건 김밥 때문이 아니었어.

아내는 신의축복을 받은 임산부중 한 명이었다.

'입덧 없는 임산부'

담당 의사의 말에 따르면 임산부 중 80%는 입덧을 겪고,

나머지 20%는 입덧 없이 임신기간을 지나간다 했다.

즉, 다섯 명 중 한 명만이 입덧을 피해 간다는 얘기였다.


주변의 말로는

입덧이란,

전날 과음을 하고 난 뒤 숙취로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계속 지속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행히 아내는 그 20%에 속했다.

덕분에 나도 큰 스트레스 없이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다.


복숭아, 자두같이 새콤달콤한 과일을 찾는다거나,

평소엔 잘 먹지 않던 빵이나 떡을 찾는 정도?

그마저도 과하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간의 소중함을 난 깊이 느끼지 못했다.


이후 제수씨가 입덧이 심해 냄새 때문에 집에서 라면도 못 끓여 먹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우리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절실히 느꼈다.


항상 며느리를 걱정하던 엄마는 전화 때마다 잊지 않고 당부했다.

"아들, 애미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거 다 사줘야 한데이. 못 먹으면 평생 기억에 남는다. 알겠제?"

전화를 끊기 전마다 반복된 말.

그땐 그냥, 알겠다고,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너무 먹고 싶다는 음식이 있다고 말했다.


"오빠. 나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김밥?? 먹으면 되지. 배달시키던지 아님 내가 포장해 올게."
"아니.. 일반김밥 말고. 그런 거 있잖아. 알김밥 같은 거 말이야."
"알김밥?? 그게 뭔데..??"
"그 밥은 조금 들고 속에 야채랑 그런 게 꽉 차있고 큰 김밥!"


그냥 김밥이 똑같은 김밥이지. 뭐가 다를 게 있나?

라고 생각은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흠.. 네가 말하는 그런 김밥 파는 데가 있어? 어디 찾아본 곳이 있어?"
"응! 성신여대에 있는 ***이라는 곳에서 팔아!"


마침 근처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고,

난 이 기회를 틈타 김밥배달을 핑계로 오랜만에 친구와 술약속을 잡아야겠다고

잔머리를 굴려보았다.


"아! 그래? 그럼 퇴근하고 김밥 사갈 테니까 친구랑 술 한잔 먹고 가도 돼?"
"흠.. 그래. 조금만 먹고 일찍 들어와"

기꺼이 허락해 준 아내가 고마웠다.

여름이라 김밥이 쉬지 않게

술자리를 마친 후 포장하자 마음먹고

친구와 고깃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

막연한 두려움,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한 불안—


술병이 하나, 둘 쌓이고

시답잖은 농담들도 오가다 보니,

결혼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2차를 가자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고

그 순간,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부우우웅ㅡ 부우우웅ㅡ'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술집이 너무 시끄러웠던 탓에 튀어나오듯

밖으로 나와 침착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찍 들어온다며.. 왜 안 들어와? 몇 신줄 알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한마디에 느낄 수 있었다.

화가 났다.

그것도 단단히.

시간도 잊고 잔뜩 신이 났던 터라

황급히 귀에서 수화기를 떼고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체크하고 나서 대답을 이어나갔다.


"응~ 알지~ 10시 좀 넘었잖아."
"일찍 들어오라고 했잖아. 언제 들어올 건데?"
"아~ 이제 다 먹었어. 들어가야지"
"하아.. 알겠어. 김밥은 샀어?"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 신이 난 덕에 김밥배달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당당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안 까먹었지. 날씨가 더워서 일찍 포장하면 김밥 쉴까 봐 갈 때 포장하려고 했어."
"11시에 가게 마감하니까, 지금 전화해서 포장주문할 테니까 찾으러 가줘."
"알겠어. 난 안 먹을 거니까 너 먹을 만큼만 포장해"

무사히 전화는 마무리됐고,

나는 황급히 김밥 가게로 향했다.

김밥집에 도착했을 땐, 포장대기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십여분이 지나고도 나의 순서는 오지 않았고,

때마침 혼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울렸다.


"왜 이렇게 안 와? 김밥만 포장해서 오는 거 아니었어?"
"대기 손님들이 너무 많아.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갈게"


순간 속으로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 대한 미 안 함 때문일까.

오랜만에 친구와의 술자리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렇게 한참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카운터에서 내 주문번호를 호명했고, 포장봉지를 낚아채듯 건네받아

김밥집을 나와 봉지 안을 확인했을 때, 커다란 김밥 세줄이 포장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돌아가기 위해 황급히 발걸음을 떼는 순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밥 포장주문한 거 받았어?"
"응. 방금 포장한 거 받았는데, 뭔 김밥을 세줄이나 포장을 했어. 이걸 혼자 다 먹게??"


정말, 아무 의도 없이 툭 한 마디 던진 건데 그 말이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다.


"내가 먹고 싶다잖아! 사 오라면 사 오면 되지. 왜 세줄이나 먹냐고 하는데!!"


쏘아대듯 몰아붙이는 큰소리에, 덩달아 화가 치밀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했다고 소리를 질러!! 나도 안 먹을 건데 많이 산거 같아서 말한 거잖아!"
"누가 너 먹으라고 했어!!? 내가 먹겠다고!! 내가!!!"
"아니.. 그러니까 너무 많지 않냐고 그냥 말한 거라고!"
"아!! 짜증 나!! 안 먹어! 갖다 버려!!"


가져다 버리란 말을 끝으로 아내는 전화를 끊어버렸고,

다시 건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김밥봉지를 손에 든 채로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뭐지? 이게 이렇게 화를 낼일이야??'


혼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다시 돌아가서

엉망이 된 기분으로 술자리를 정리하고 나왔고,

가져다 버리라던 김밥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오늘 있었던 상황과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술 조금만 먹고 일찍 들어오라고 했는데 늦게 와서 화난 건가..'

'김밥 세줄을 혼자 다 먹을 거냐는 말 때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화를 낸 이유를 찾지 못했고,

집으로 돌아갔을 땐 아내는 이미 잠에 든 상태였다.

난 허탈하고 황당한 마음에 식탁 위에 김밥 봉지를

아무렇게나 올려두고

거실 소파에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밝아왔고, 깨어있는 아내에게 전날의 황당하고 어이없던 감정은

최대한 억누른 채 말을 건네었다.


"식탁에 김밥 있어. 김밥 먹어."
"안 먹어."
"내가 어제 뭐 기분 나쁘게 말한 게 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이해가 안 돼. 이건 네가 잘못한 거잖아."


그 순간,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 아니.. 왜 울라그래.. 왜 그러는데..??"
"나도 모르겠어.. 감정이 주체가 안돼.. 그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이 맛도, 저 맛도 먹어보고 싶어서 세줄 산 건데.. 왜 세줄이냐 먹냐고 하는 말이 너무.. 서운하고.. "


말이 채 다 끝나기 전에 아내를 끌어안았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증가는 임산부의 감정에 큰 영향을 끼치고,

이런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각종 영상들과 글로 읽었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내는

늘 씩씩했고,

밝았고,

무던했다.

그래서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뭐지? 이게 이렇게 화를 낼일이야??'』


이런 갖가지 이유를 찾을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뒤죽박죽인 감정들 속에서 괴로워했을

아내의 감정을 못 알아차린 나의 무던이고 무심이었다.

괜찮았단 건 나뿐이었다는 미안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참아왔던 감정들을 토해내듯 우는 아내의 토닥이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마음이 그런 줄 몰랐어.. "
"나도.. 나도 미안해.."
"너무 많이 울면 안 좋으니까, 먹고 싶다던 김밥 먹어볼까?"
"응.."


이미 하루가 지나버린 김밥은 딱딱하고 말라있었지만,

아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먹었다.


이후에 아내는 아이를 낳고도,

종종 김밥을 먹을 때면 장난처럼 그날의 김밥 얘기를 꺼내곤 한다.


"아~ 오빠가 많이 먹는다고 구박했던 김밥이네~"
"에휴~ 그래그래. 내가 구박했던 김밥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속이 시원하냐?"
"흥! 그럼~"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은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아들, 애미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거 다 사줘야 한데이. 못 먹으면 평생 기억에 남는다. 알겠제?"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