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겁났지만, 울컥 고마웠던 그날의 심장소리.
아내의 임신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건
당연히 양가 부모님이었다.
각자 전화로 말씀드렸는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래? 잘됐네. 몸조심해라."
"응, 알았다. 축하한다."
말은 그렇게 짧고 담담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숨소리나 말끝에 묻어 있는 떨림이
그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감정이 들뜨는 게
우리에게 더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이후, 우리의 일상은 마치 톱니가 맞물린 듯 바삐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출퇴근 길에도, 회사 점심시간에도
임신 관련 정보를 틈틈이 찾아봤다.
먹어도 되는 음식, 피해야 할 음식,
복용 가능한 약, 안 되는 약,
임신 주수에 따라 챙겨야 할 영양제까지—
예전엔 눈길도 주지 않던 정보들이
하나같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런 변화들 속에서 아내는 익숙한 즐거움들을
하나둘 내려놓아야 했다.
아침에 꼭 한 잔 하던 커피,
저녁마다 함께 마시던 맥주,
스트레스를 날려주던 떡볶이.
모두 단번에 끊었다.
엄마는 위대하다고 했던가.
솔직히 나였다면, 그렇게 단칼에 끊어낼 수 있었을까?
아마도 꽤 괴로웠을 거다.
그 모든 것들을 단념하고 있는 아내를 보며
나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신경 쓰게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우린 임신 8주 차가 되었고,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예약을 했음에도 병원은 산모들과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나는 이런 병원 분위기가 처음이라 괜히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드디어 아내의 이름이 불렸고
우린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편분도 오늘 오셨네요. 오늘 잘하면 심장 소리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심장 소리?
항상 초음파 사진만 받아봤던 나로선
귀로 아이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이상할 정도로 낯설었다. 설레면서도 막막했다.
“남편분은 여기 잠시 계세요. 산모님은 초음파실로 먼저 들어오실게요.”
혼자 남은 나는 괜히 다리를 떨고,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음파실에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분,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 말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화면.
그리고 그 화면 안에
아주 작은 생명.
“여기가 머리고, 여기가 손이에요. 그리고 이쪽—잘 보이시죠? 여기서 조그맣게 뛰는 게, 심장이에요.”
나는 숨도 못 쉬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이제, 심장 소리 들어볼게요.”
초음파 기계가 조심스럽게 초점을 맞췄고
그 순간, 초음파실 가득—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쿵쾅——’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안을 두드렸다.
콩알만 한 심장이,
온몸으로 이 세상에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소리는 마치 북소리 같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 심장 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숨을 삼켰고,
가슴 한복판이 뜨거워졌다.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말도 안 되는 이 작은 존재가
내 인생 전체를 덮고 있었다.
병원을 나서며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하게, 단단하게.
그리고 속으로
아주 조용하고 단호하게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
너도, 아기도.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앞만 보고 같이 가자.’
예비 엄마, 예비 아빠.
우린 이제,
열 달의 대장정을 함께 걷기 시작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