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꽃이었다.
작고 단단한 줄기에서 나고 자라,
오랜 시간 바람도 이기고,
비도 맞으며,
우리 곁을 지켜주던 꽃.
그 꽃이 지금은 조금 시들해졌다.
빛이 닿지 않는 병실의 창가에 누워 계신 할머니는,
예전의 환한 얼굴이 아니었다.
마치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을 맞은 들꽃처럼,
얼굴은 어둡고 몸은 많이 여위셨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음 한켠이 서늘했다.
‘아, 보내드려야 하는 시간이 오는 건가...’
아무리 준비해도,
그런 마음엔 익숙해질 수 없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에 들어섰을 때,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건 우당탕 발 구르는 소리.
그리고 눈을 마주치자마자
하얗게 웃는 딸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말도 아직 서툴고,
걸음도 불안한 아이지만
그 하얀 웃음은 꽤나 단단했다.
그 아이를 끌어안고,
조심스레 손이며 발을 만져보았다.
작고 오동통한 손가락,
탱글한 팔뚝,
발바닥에 닿는 따스한 살결.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햇살은 언제나 같은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꽃잎은 시들지만,
그 자리 아래에서는 늘 새순이 자란다.
삶은 그렇게,
무너지면서 이어지고,
사라지면서도 남는다.
딸아이를 안은 채,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울지 않았다.
그냥, 아주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늘진 꽃 아래, 어느새 새순 하나가
이다지도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