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은 나의 반항이었다

워라밸은 기업이 주는 복지가 아니다. 능력이 지켜낸 삶의 균형.


워라밸이라는 말이 있다.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 이라는 뜻으로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말이다.


구직자나 이직 희망자들 사이에서도 기업이 제공하는 '워라밸'이 어느 정도인지가


구직 혹은 이직의 중요한 척도가 되곤한다.


나 또한 14년차 개발자로써 '워라밸'은 개인, 기업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기업의 문화나 개인의 중요가치의 변화로 인해 '워라밸'을 중요시하게 되었지만,


14년전 내가 신입개발자였을때만 해도 지금의 문화와는 현저히 달랐다.


'야근'은 성실함의 척도이자, '밤샘'은 책임감의 척도였다.


개인적인 일로 인해 정시퇴근을 하기위해선 사전에 선임개발자에게 조심스레 부탁을 해야만 했고,


프로젝트 막바지엔 이마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되었고,


'밤샘'을 하지 않으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시 나의 선임개발자가 해주셨던 말 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코딩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것이다."


난 예나 지금이나 반골기질이 있어, 이러한 개발자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보여주기 식의 목적없는 야근과 성과없는 밤샘을 자처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발자가 아니야' 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따가운 눈총을 외면한 채,


매일 정시퇴근하는 ‘개념 없는 개발자’가 되었다.


하지만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법이다.


매일 정시퇴근하는 내 행동이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개발팀장이


나를 따로 불러내어 왜 야근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었고


그때의 난 야근을 해야 하는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대답하였다.


본인보다 10살도 더 어린 신입의 당돌함에 기분 나쁜 헛웃음을 지으며


신입 개발자 중 유일하게 일일보고서 제출을 지시하였다.


아마도 맑은 물을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같은 신입 나부랭이를 혼내고 싶은 마음이었을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불합리함에 지고 싶지 않았기에 그 날 이후 필사적인 나날들을 보냈다.


출퇴근 길 매일 코딩 공부를 하며, 정시 퇴근 후엔 집에서 다음 날 업무까지 미리 준비했다.


항상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결과를 내야만 했으니까.


『오류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나를 눈엣가시처럼 보았던 팀장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던것이다.


'트집을 잡고 싶으면 잡아봐라. 누가 이기나 보자.'


그렇게 신입사원 중 제일 빨리 대리진급을 하고나서야 더이상 일일보고 제출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누구도 나의 정시퇴근을 눈엣가시처럼 보지 않았다.


나의 반항심으로 시작된 정시퇴근 투쟁이 다른직원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이 변해갔고, 회사가 변해갔고, 고착 된 문화가 변해갔다.


하나 둘 정시퇴근을 외치는 직원들이 많아졌고,


조금씩 아주 천천히 정시퇴근은 흠이 아닌 자랑이라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날의 업무시간을 성실히 임했던 자의 포상이요.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14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야근을 싫어한다.


하지만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렇게 싫어하는 야근을 해야만 할 것이다.


매순간 능력을 증명하고 개인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고서는 삶(Life)은 보상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꾸준히 나의 일(Work)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때 비로소 삶(Life)이 당연하듯 찾아올 것이다.


균형(Balance)은 기업에서 제공하는 것 아니다.




검증된 능력과 성장한 역량만이, 삶(Life)을 지켜낼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진짜 ‘균형(Balance)’은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