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서 없이도.

실패해도 괜찮아.

와이프가 빨래 수납함을 하나 샀다.
조립식이었는데, 제품 안에 설명서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감으로 조립시작!
아귀가 맞는 부품들을 끼워보고, 안 맞으면 빼고…


근데 어느 순간, 잘못 낀 부품이 안 빠지더라는 거다.


힘을 줬다간 부러질 것 같고,
짜증이 올라왔지만 꾹 참고 천천히 다시 조립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겨우 마무리했는데
이번엔 또 어딘가 덜렁거려서 주변을 돌아보니,

초반에 조립해야 하는 부품을 아예 빼고 만들었더라는 거다.

멘붕이 왔지만 다시 처음부터 분해하고 조립을 했다.


세 번째.


결국은 완성.


뿌듯함을 안고 박스를 정리하려는데
박스 겉면에 조립 설명서가 인쇄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 허무하고 어이가 없었다고.

웃기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나는 그 얘길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명서를 처음 봤다면 한 번에 끝났겠지.

틀릴 일도 없었을 거고,

시간도 아꼈을 거다.


근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조립식 수납함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거 아닐까.
뒤집어서도 껴봤고,
빠지지 않아 애도 태워봤고,
뭐가 빠지면 어떻게 흔들리는지도 알게 됐으니까.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처음부터 설명서는 없으니까
우린 당연히 헤맨다.
거꾸로 가고,

중요한 걸 빼먹고,
다시 뜯어내고 또 시작하고.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면서
우린 조금씩 더 정확해지고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꼭 잘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잘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괜찮다.


그깟 설명서 없이도
우린 결국 살아내니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