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Vol. 170 '식탁을 부탁해'
마트에 가면 화려한 포장과 문구로 도배된 온갖 식품들이 아이와 부모를 유혹한다.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도 식품도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중요한 법. 식품라벨은 우리가 먹을 식품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화려한 겉포장 뒤에 새겨진 식품라벨을 똑똑하게 읽어 우리 아이의 건강을 챙겨보자.
글 성소영 에디터 박은아 포토그래퍼 강봉형
마음에 드는 옷을 잘못 세탁해 다시는 입지 못하게 되거나, 상자에 붙은 주의사항을 제대로 읽지 않아 물건을 망가뜨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실 내용물을 앞에 두고 포장상자에 점처럼 새겨진 라벨을 꼼꼼히 살피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 ‘식품’을 대할 때만큼은 이러한 ‘귀차니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식품의 원재료명, 내용량, 제조일자, 유통기한, 영양성분 등을 포장 또는 용기에 표시하도록 하는 식품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식품표시제 규정에 맞춰 정보를 표기한 식품라벨은 소비자가 알아야 할 정보가 총망라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식품이든 상관없이 식품라벨을 읽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영양성분표에 적힌 열량 및 영양성분이 ‘1회 제공량’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예컨대 총 중량이 168g인 과자의 1회 제공량이 28g이라면, 라벨에 적힌 칼로리 및 성분은 총 제공량을 6번으로 나눈 결과를 표시했다고 보면 된다. 식품라벨에는 이처럼 식품회사가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소비자를 요리조리 속이는 술수들이 가득 숨겨져 있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수많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라벨을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식품라벨 읽는 순서
1. 식품에 표기된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2. ‘인증 마크’는 무엇이 있는지 확인한다. 보통 포장지 앞면에 잘 보이게 인쇄돼 있다.
3. 영양성분표를 확인한다. 이때 반드시 1회 제공량을 먼저 읽고, 구입하려는 식품이 총 몇 회 제공량인지를 확인한다.
4. 원재료명 확인을 통해 위험한 첨가물 및 중요 영양소가 얼마나 포함됐는지 살핀다.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 마크를 확인하세요!
수많은 종류의 식품 앞에서 일일이 성분 분석을 하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한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 마크가 있는 제품을 선택하자. HACCP 적용 식품, 단백질·식이섬유·비타민·무기질 등 영양성분 강화, 타르색소·합성보존료 무첨가, 과채 주스의 경우 당류 무첨가 식품에 한해 품질인증을 해주는 제도로 현재까지 121개(2016년 1월 기준) 제품이 품질인증 마크를 획득했다.
과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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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첨가물 NO!
트랜스지방, 열량, 나트륨이 적은 것을 선택
기름에 튀기거나 구워 만드는 과자는 영양소가 거의 없는 고열량, 저영양 식품으로 소아 비만의 원인이 된다. 과자를 먹일 수밖에 없다면 ‘영양성분표’의 트랜스지방, 당류, 나트륨 함량을 확인해서 조금이라도 건강한 과자를 고르는 것이 좋다.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에 따르면 1회 제공량(30g 기준) 중 열량 250kcal 이하, 당류 17g 이하, 나트륨 120mg 미만의 제품을 권장할 만하다. 트랜스지방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하루 필요 열량의 1% 미만으로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어린이의 하루 필요 열량으로 계산하면 약 1.8g 미만에 해당하는 수치이므로, 되도록 트랜스지방은 0g인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과자에서 조심해야 할 또 다른 성분은 팜유와 조미첨가물이다. 스낵류에서 흔히 사용하는 성분인 ‘팜유’는 기름야자열매로 만든 식물성 기름으로 마가린, 쇼트닝 등의 원료가 되는데 액상일 때는 몸에 흡수됐다가 온도가 낮아진 혈관 내에서는 고체 상태로 바뀌어 장기 섭취 시 혈관을 막고 콜레스테롤을 높인다. 따라서 ‘팜유’ 또는 ‘식물성 유지’를 사용한 과자보다는 ‘포도씨유’ ‘해바라기씨유’ 등으로 만든 과자가 더 안전하다. 흔히 라벨에 ‘~맛 분말’이라 쓰인 재료는 ‘조미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조미첨가물의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더 강한 감칠맛을 원하게 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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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함량은 낮고 과즙의 비율이 높은 것을 선택
착향료, 색소는 NO!
귀여운 캐릭터통에 담긴 어린이용 음료나 과일 주스를 선택하면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제품들의 산도나 당류 함량은 다량 섭취 시 위험하다고 알려진 탄산음료와 비슷한 수준. 안타깝게도 과일 주스 역시 ‘과일 향을 넣은 설탕 주스’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료의 식품라벨에서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당’의 함량이다. 음료 라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액상과당’은 전분을 가수분해해 얻은 포도당액을 과당으로 전환시킨 것으로, 쉽게 말해 설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착향료(향을 내기 위한 첨가물), 식용색소, 향미증진제 등이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모두 아이들의 충치와 비만을 유발하는 성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과일 주스 병에 ‘100%’ ‘내추럴’ ‘비타민 함유’ 등의 문구를 새겨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품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의 마음을 노린 상술이므로 주스 구입 시에는 과즙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야 한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건강한 주스’가 되기 위해서는 과즙 함량이 95% 이상 돼야 한다. 만약 라벨에 정확한 함량이 적혀 있지 않을 때는 이름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식품유형’ 란에 ‘혼합음료’라고 써 있다면 과즙 함량이 10% 미만, ‘과채음료’라고 적혀 있다면 10~95% 사이, ‘과채주스’라고 쓰여 있을 경우에는 95% 이상이니 참고하자.
유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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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 및 유통기한 체크
탈지분유보다는 우유 선택
치즈 및 요구르트는 원재료명 확인
유제품 회사에서는 경쟁적으로 DHA, 비타민, 칼슘 등 다양한 영양소를 첨가한 ‘강화우유’를 선보이고 있다. 강화우유라는 문구는 부모들에게 보다 많은 영양소가 들어간 우유라는 믿음을 주지만, 사실 강화 성분이 우유에 잘 녹게 하는 첨가물이 들어간 경우가 많고, 강화 성분으로 인한 효과는 미미하다. 따라서 흰 우유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또 우유는 원유에 들어 있는 세균 수와 체세포 수에 따라 1급A, 1급B, 2등급, 3등급, 4등급으로 나뉘므로 되도록 1등급 원유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유제품을 고를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우유’와 ‘분유’ 중 무엇을 넣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 우유’는 대부분 ‘원유’가 아닌 ‘탈지분유’로 만든다.
탈지분유는 우유에서 지방을 분리·제거해 건조시켜 분말로 만든 것으로 1년 이상 장기 보존할 수 있어 원유에 비해 신선도가 훨씬 떨어진다. 부득이하게 ○○맛 우유를 먹일 경우에는 원유에 과즙을 섞은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요구르트의 경우 포장지에 ‘무첨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도 원재료에는 설탕, 과당, 합성착향료 등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반드시 원재료명에 설탕 또는 과당이라는 문구가 없는지를 확인하자. 또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치즈는 대부분 가공치즈인데 어린이용으로 나왔다고 할지라도 유화제, 색소 등이 들어 있을 수 있으므로 자연 치즈의 함량이 80% 이상이며, ‘버터’를 가공해 만든 제품을 고르는 게 좋다.
육가공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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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의 원산지 및 함량 확인
아질산나트륨 NO!
냉동식품은 반드시 HACCP 마크 확인
햄, 소시지, 치킨 너겟 등 육가공식품은 아이들이 좋아할 뿐 아니라 반찬 만들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부모들에게도 유혹적인 식재료다. 하지만 고기를 가공해 인위적으로 만든 식품이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햄, 소시지 등의 식품라벨에서 가장 흔히 눈에 띄는 것이 ‘L-글루타민산나트륨’ ‘코치닐추출색소’ ‘아질산나트륨’이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은 우리가 알고 있는 MSG를 뜻하고, 코치닐추출색소는 연지벌레 암컷에서 추출한 붉은색을 띠는 천연색소로 비교적 안전하다. 가장 주의해야 할 성분은 ‘아질산나트륨’이다. 햄을 냉장고에 오래 두어도 선명한 분홍빛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아질산나트륨이라는 발색제가 들어 있기 때문. 독성이 강하고 돼지고기의 아민 성분과 반응해 ‘니트로소아민류’라는 발암물질을 생성하므로 되도록 먹지 않는 게 좋다.
이외에도 육류의 원산지 및 함량을 꼼꼼히 따져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두세 가지 종류의 고기(우육, 계육, 돈육)가 섞인 제품은 질이 떨어진다. 냉동식품은 착색료, 유화제, 산화방지제가 들어 있는지 살피고 반드시 HACCP 인증 마크가 있는지 확인하자. 냉동식품의 경우 HACCP 인증을 받는 것이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마크가 없다면 불량식품으로 의심해야 한다.
식품 포장에 커다랗게 적힌 ‘건강에 좋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따위의 수식어에 아직도 현혹되고 있다면 다음의 내용을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식품회사의 거짓 마케팅에 속지 않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자.
무(無)첨가에 속지 말자
식품첨가물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이제 모든 소비자가 아는 사실. 이러한 소비자를 속이기 위해 식품회사들은 ‘몸에 나쁜 것을 넣지 않았다’고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흔히 아는 L-글루타민산나트륨, 설탕,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하지 않았다고 홍보하는 제품의 경우, 대부분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다. ‘무설탕’을 내세우며 다이어트 및 건강에 좋다고 광고하는 제품은 설탕이 아닌 단맛을 내는 올리고당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탕을 넣었을 때보다 많은 양의 당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하자.
0kcal는 0kcal가 아니다
식품표시기준에 따르면 1회 제공기준량이 설정된 제품은 1회 제공량에 함유된 칼로리를, 1회 제공기준량이 설정되지 않은 제품은 100ml(g)당 함유된 칼로리를 표시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 1회 제공량 또는 100ml(g)의 열량이 5kcal 미만이면 ‘0kcal’로 표시하는 것을 허용한다. 즉, 1회 섭취량이 5kcal 미만이라면 총 제공량의 칼로리와 상관없이 0kcal라고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또 0kcal라고 홍보하는 식품에는 보통 열량을 거의 내지 않고 단맛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인공감미료가 첨가돼 있는데, 미국 퍼듀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열량이 없는 인공감미료가 몸에 혼란을 줘 오히려 살이 찔 수 있다고 한다. 칼로리가 없는 음식은 생수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100%에 숨은 비밀
식품업계만큼 100이라는 숫자를 효과적인 마케팅 문구로 활용하는 곳도 없다. ‘100% 오렌지 주스’라고 하면 사람들은 오로지 오렌지만으로 주스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주스 안에 섞인 과즙에 다른 과즙을 섞지 않고 오렌지만 사용했다는 의미이기 때문. 따라서 색소 및 향료 등의 사용 여부와는 별개의 표시인 것이다. 실제로 원재료명을 살펴보면 정제수에 오렌지 과즙 5%미만, 과일 향, 구연산 등이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름을 바꾼 식품첨가물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값싸고 편하게 식품의 맛과 유지기간을 향상시킬 수 있는 첨가물은 식품회사에서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재료다. 따라서 이들은 교묘하게 식품첨가물의 이름을 속이곤 한다. ‘L-글루타민산나트륨’은 ‘향미증진제’, ‘아질산나트륨’은 ‘발색제’ 또는 ‘합성보존료’, ‘타르색소’는 ‘합성착색료’, ‘사카린나트륨’은 ‘합성감미료’로 표기하는 것. 이러한 속임수를 숙지하고 식품을 고르는 데 참고하도록 하자.
참고 도서
김정원 외 <식품라벨 꼼꼼가이드>, 최낙원 <당신이 몰랐던 식품의 비밀 33가지>
와타나베 유지 <먹으면 안 되는 10대 식품첨가물>, 황태영 <식품첨가물의 숨겨진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