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그 시인, 그 폭포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 폭포

by 스프링버드


패터슨: 폭포



풀어야 할 공통 언어를 무엇인가?

폭포는 직선으로 빗질된다

바위의 서까래로부터

바위의 입술로부터. 공격해 들어간다! 깊숙이


정곡을 찌르는 모종의 절, 모종의

잘 짜인 문장 속으로. 그러니까......

이게 내 계획이다. 4 부분: 첫째,

이 드라마의 고대 인물들.


새와 관목의 영원함,

해결. 해결 못한 것:

일직선의 물줄기들이 혼란스럽게, 나란히

흐르며, 말하고 있는 것! 소리는


힘과 결혼했다, 힘찬

낙하의 힘과 ―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그 힘! 격렬하게

외치는 와이셔츠 차림의

복음사가의 목소리만이 그에 필적한다, 들어라


내 말을! 나는 부활한 그리스도요

생명이노라! 메아리친다

사르가소 해역, 바베이도스 산

농어와 강꼬치, 날씬한 장어들 사이로


그 바다로, 뻗친다, 해안을 따라 저

풍요로움, 연못과 야생의 물길들까지 ―

세 번째, 구시가지: 알렉산더 해밀턴은

세인트크로이섬으로부터 뻗친다,


그 바다로부터! 그리고 더 깊은 곳, 거기에서

그가 왔다! 그리곤 문득

저 끄떡없는 포효에 멈춰, 고정된다

그곳에: 바위들은 침묵한다


그러나 물은, 바위와 결혼하여,

열변을 토한다, 얼었음에도, 물은

얼었을 때조차

여전히 속삭이고 신음한다 ―


그리고 바스러지는 대기 속에서

공장의 종은, 새벽마다, 울린다, 그리고

눈은 그들의 발 밑에서 새된 소리를 지른다. 네 번째,

신시가지, 한


육신 없는 존재가 포효한다! 큰 폭포와

그 아우성을 산산이 흩어놓으며 ― 그리하여

깊이 배웠으니 텅 빈

귀가 내부로부터 공격당한다, 포효하면서......



영화 <패터슨>은 한 버스기사의 일주일을 따라간다. 아침에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잠에서 깨고, 아내는 방금 꾼 꿈 이야기를 해주는 보통 일상이다.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아침을 먹고 버스 차고지까지 걸어가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풍경을 관찰한다.


그의 매일은 변함이 없다. 버스 관리인과 매번 똑같은 아침 안부를 나누고, 노선은 언제나 동일하며, 그의 퇴근길도 그렇다. 말하자면, 그의 하루하루는 별일이 없다. (그러나 별일 없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별일을 당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남자는 얇은 공책을 한 권 갖고 다닌다. 그 안에는 그가 생각한 구절과 문장이 머릿속에서 다듬고 다듬어져 한 줄씩 감질나게 옮겨진다. 주제는 대단하지 않다. 성냥이던가, 라이터든가, 뭐 그런 사소한 일상의 물건과 관련된 시다. 사소하다면 아주 사소할 이야기. 하지만 시인들은 사소함이 품고 있는 시를 꺼낼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일상의 반복성을 강조하려고 감독은 일부러 쌍둥이들을 등장시킨다. 영화 속에는 여러 어른 쌍둥이와 어린 쌍둥이가 나온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미묘하게 달라서, 어느 날, 시인은 우연히 한 소녀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소녀는 시를 쓰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길 가에 앉아있던 그 소녀는 남자에게 자기 시를 들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건물에서 나오는 엄마와 동생. 소녀는 알고보니, 쌍둥이였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하나는 시인의 자아, 다른 하나는 생활인의 자아. 우리는 모두 쌍둥이다. 완벽한 일란성, 샴쌍둥이.

아닐까? 나는 그런 것 같다. 시인이 아무리 저 깊이 숨어있다고 해도, 우리 안에는 아마도 그런 존재가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 남자는 폭포 앞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는다. 폭포를 바라보며 남자는 머릿속에서 시를 굴린다. 시는 구르고 굴러서 그의 공책에 흔적을 남긴다.


패터슨은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남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남자가 곧 도시라는 은유일 것이다.

패터슨은 시인이 살았던 도시에 있는 폭포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것 역시 은유로 읽고 싶다. 폭포는 시인의 정신이라고, 혹은 분신이라고.


시인도 영화 속 남자처럼 폭포를 보며 한참을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시를 굴리고 굴렸을 것이다. 폭포는 물속으로 물줄기를 내리꽂는데, 물은 흐름이니, 곧 육신 없는 존재다.

그것은 입 아닌 입으로, 고대인들의 삶과 새와 관목들을 이야기한다. 우리 안의 야생을 불러낸다.

그것은 저 먼 바닷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저 먼바다로부터 왔다.

그것은 4대 복음을 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진리를 외친다. 포효한다, 메아리친다.

폭포는 물속으로 내리 꽂히며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폭포에게서 가르침을 전수받기 위해, 폭포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그렇게 해서 자신의 안으로부터 진실한 문장들을 끌어내기 위해, 자꾸만 자꾸만 폭포를 찾아갔을 것이다.



* 이것으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 읽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족한 글을 지금까지 같이 읽어주신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Paterson: the Falls


What common language to unravel?

The Falls, combed into straight lines

from the rafter of a rock’s

lip. Strike in! the middle of


some trenchant phrase, some

well packed clause. Then......

This is my plan. 4 sections: first,

the archaic persons of the drama.


An eternity of bird and bush,

resolved. An unraveling:

the confused streams aligned, side

by side, speaking! Sound


married to strength, a strength

of falling ― from a height! The wild

voice of the shirt-sleeved

Evangelist rivaling, Hear


me!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echoing

among the bass and pickerel, slim

eels from Barbados, Sargasso


Sea, working up the coast to that

bounty, ponds and wild streams ―

Third, the old town: Alexander Hamilton

working up from St. Croix,


from the sea! and a deeper, whence

he came! stopped cold

by that unmoving roar, fastened

there: the rocks silent


but the water, married to the stone,

voluble, though frozen, the water

even when and though frozen

still whispers and moans ―


And in the brittle air

a factory bell clans, at dawns, and

snow whines under their feet. Fourth,

the modern town, a


disembodied roar! the cataract and

its clamor broken apart ― and from

all learning, the empty

ear struck from within, roaring.......



* 민음사에서 출판된 영한대역 시집 <패터슨>, 2021년판에서 발췌한 시입니다. 정은귀 번역자의 번역이 아닌 제 언어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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