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겔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눈 속의 사냥꾼

by 스프링버드


III. 눈 속의 사냥꾼들


그림은 전체적으로 겨울이다

얼음이 뒤덮인 산들을

배경으로 귀가하는 길


사냥에서 돌아온다 시간은 저녁 무렵

왼쪽에서

건장한 사냥꾼들이 그림 속으로


짐을 메고 들어오고 여인숙 간판이

대롱대롱

부서진 경첩에 매달려 수사슴 십자가상이 되었다


그것의 두 뿔 사이에서 차가운

여인숙 마당은

텅 빈 채 거대한 모닥불만


바람에 날리고 불길을 살피는

여인들이 여럿

주변에 모여있다 오른편으로는 멀리


언덕 아래로 스케이트를 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화가 브뤼겔은

무리 전체를 배려하며 선택하길


겨울이 몰아친 관목으로 자신의

전경을 삼아

그림을 완성했다 . .



눈이 내린 북한산을 걸었다. 브뤼겔의 그림 속처럼 산에는 눈이 한가득이었고 빈 가지마다 잎 대신 눈을 담뿍 담뿍 얹고 있었다.

시인은 그림을 다 말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새가 한 마리, 나뭇가지에도 두 마리, 사냥꾼들 뒤에는 사냥개들이 따르고 있다. 모두 지쳐서 고개를 숙인 채로.


브뤼겔의 그림들은 언뜻 보면 아기자기하고 예쁘지만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서민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시인은 십자가를 언급한다. 여인숙의 간판이 매달린 모습에서 십자가를 본다. 더구나 간판 안에는 수사슴이 그려져 있는데 (들여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그가 곧 예수님임을 누가 모르겠나.


사냥꾼들이 등에 진 사냥감은 여우.

그들이 장대에 여우를 메고 가는 모습 역시 십자가상의 변주여서, 간판에서 사냥꾼 두 명에게로 십자가상은 하나, 둘, 셋으로 이어진다.

삶은 고달프다.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우리도 살고 있습니다,라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것만 같다.


시인은 16세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브뤼겔의 그림을 소재로 연작 시를 썼는데, <패터슨>에 들어있는 연작시는 모두 열 편이다.

하필 왜 브뤼겔일까?


화가는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그들의 고통과 삶의 부조리와 기이함과 부당함을 고발했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위험인물이지 않았을까 싶다. 죽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의 그림을 불태우라고 했다고 하니. 그림으로 인해서 아내가 화를 입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니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브뤼겔에 끌린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시인 역시 화가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니.

번역자 정은귀 씨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


시인의 눈은 다른 이들이 보는 것을 같이 보면서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눈이다.



시인이 그저 그림을 묘사하기만 하는 이유를 알겠다.

놓치지 말고 보시라, 고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이다.

가난한 여인숙 간판에서 십자가를 보시라,

겨우 여우 한 마리를 잡고 돌아오는 사냥꾼의 지친 어깨에서도 십자가를 보시라,

그들이 돌아가는 마을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자식들이 저렇게나 즐겁게 놀고 있는데...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놓치지 말고 보시라.

동시에 불길에서, 우리의 안에-부유한 이의 몸 안에서와 똑같이 가난한 이의 몸 안에서도-이렇게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 또한 보시라.


그런데…

스케이트 타는 저 무리 속에서 추위로 볼이 빨개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시인은 놓쳤다.

바람에 날리는 불길이 우리의 삶을 태울 듯 위협해도, 여인들이 불을 살살 달래고 있다는 걸 시인은 놓쳤다.


한 해가 가고 다른 한 해가 오는 즈음,

깊은 겨울에,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과 품 넓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드러운 손길을 그림 속에서 나는 읽고 싶다.


시인이 옆에 있다면 그 소리까지 들으시라, 그 손길까지 보시라,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해맑은 아기처럼 순진하게 잠시만 웃으시라, 가만히 얘기해주고 싶다.


모두 따뜻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으시기를 기원합니다!







III. THE HUNTERS IN THE SNOW


The over-all picture is winter

icy mountains

in the background the return


from the hunt it is toward evening

from the left

sturdy hunters lead in


their pack the inn-sign

hanging from a

broken hinge is a stag a crucifix


between his antlers the cold

inn yard is

deserted but for a huge bonfire


that flares wind-driven rended by

women who cluster

about it to the right beyond


the hill is a pattern of skaters

Brughel the painter

concerned with it all has chosen


a winter-struck bush for his

foreground to

complete the picture . .




* 커버 그림은 피터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 (1565년) 입니다.

* 민음사에서 출판된 영한대역 시집 <패터슨>, 2021년판에서 발췌한 시입니다. 정은귀 번역자의 번역이 아닌 제 언어로 다시 번역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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