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송지영 작가님의 <널 보낼 용기>가 책이 되어 나왔다. 제목의 세 단어, 너, 보내다, 용기에 작가의 모든 마음이 담겼으리라 짐작한다. '너'란 말속에는 지극한 사랑이, '보내다'란 말속에는 '떠나는 너의 마음을 나는 존중해'란 말이, '용기'란 이 모든 아픔을 돌아보고 수용하려는 결심이 함축되어 있다고 나는 이해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왜냐하면 나도 아들을 보내었기에. 다만, 지난 4년을 돌아보건대 내게 용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책 제일 처음 구절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란 서진이(작가님의 막내)의 말이다. 어른이 되는 일. 어른이 이미 되어있는 어른들은 그 험난한 과정을 아마도 기억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순탄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길을 힘들게 간다는 사실 자체, 힘들어한다는 사실 자체를 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을-아니, 나이를 불구하고 모든 힘든 상황의 사람들을-약하다고 비난한다. 그게 이 사회의 전반적 목소리인 것 같다. 고통을 겪는 사람과 고통의 본질을 비웃는, 견딜 수 없는 사회의 가벼움이랄까. 그런데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나 스스로가 경솔하고 오만하게 살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뼈아픈 경험으로 배웠다.
아플 때 '악' 소리를 지르는 게 정상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건 오히려 병리적 상황이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마음과 몸과 삶이 비교적 편안한 사람들은 안전지대에 모여 산다. 나도 그래왔고 지금도 대체로 그렇기에, 그것 또한 사람의 보편적이고 당연한 본성이기에, 누구를 탓하기도 미안하다. 아무튼 같은 하늘 아래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모른다.
<널 보낼 용기>에서 작가님은 열일곱 살 딸을 잃은 슬픔만 얘기하지 않는다. 아이가 앓았던 양극성장애 2형(일반적으로 우리가 막연히 조울증으로 부르는 질병)의 증상, 발병을 자극하고 악화시키는 교육제도의 문제, 사회의 총체적 몰이해를 지적한다. 그리고 작별하고 슬퍼하는 남은 이들이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떠난 이를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어제 23일, 망원동의 작은 독립서점 테일탱고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작가님의 얘기를 마저 들을 수 있었다. 삶에서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다 일어나는데 나쁜 일로 좋은 일까지 덮지 말라는 것, 다시 말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분리하라는 작가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작가님은 회복력을 믿는다고 했다. 회복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건, 회복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뜻이다. 그러니 회복력은 '믿음'으로 지탱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지탱할 버팀목마저 부서져 내린 상황에서 회복을 향해 일어서서 걸어가려면, 믿음이 생겨나려면, 누군가가 필요하다. 곁에 있어줄 누구. 그게 우리의 몫이 아닌가 한다. 우리 개인,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있어서 민감해져야 할 부분이다.
송지영 작가님은 정말 중요한 문제를 또 하나 짚었는데, 비극과 불행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극은 사건이고 불행은 감정이다. 비극을 겪어도 우리는 그것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할지라도 애통의 시기를 지난 뒤 우리가 할 일은 비극을 하나의 사건으로, 외부적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쉽지 않고,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송지영 작가님께 힘을 보태고 싶어서 갔던 북토크에서 도리어 힘을 얻고 왔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으로 깊이 잠수한 용기, 침잠하고 삭여내서 고통의 가치를 건져올린 숙고에 존경을 보내며, 조용히 응원해드리고 싶다.
삶의 고통은 아들을 잃고 딸을 잃은 엄마, 아빠에 한정되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다. 형제와 친구를 잃기도 하고, 나 자신을 잃기도 하리라. 고통은 상실이라는 형태로만 오지도 않는다. 고통은 무한히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개인의 삶 전반에, 사회와 역사의 전반에 스며있다. 때로는 화산처럼 터지고 때로는 태풍처럼 닥친다. 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사는 수밖에. 이왕이면 잘 살아내면 좋겠다. 하지만 더 오래 쓰러져 있어도 괜찮다고, 많은 힘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뭘 하고 계시든 다 괜찮다고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살고 있고,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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