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은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기에 짧았다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좁혀가고 공유하는 것, <보름달이 뜨는 밤>

by 다흰

짧았던 연애가 끝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짧은 연애였다. 짧았던 만큼 아쉬웠고, 기대했던 것만큼 후회가 남았다. 쉬지 않고 연애를 해 온 데다가 주로 한 사람과 이별하면 곧장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의 공백기 이후 조금씩 마음을 열어 조심스레 시작한 사랑이라 나로서는 굉장히 특별했다. 상대방이 나이도 있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만남을 원했고 그 끝에는 지금까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제도인 '결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나라는 사람이 다음 발령지를 그가 사는 동네로 옮기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좋아했고 특별했다.


그와의 만남에서 가장 기대했던 건 서로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세계를, 그는 나의 세계를 넓히기를 원했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 관심도 없고 좋아하는 음식이라곤 오로지 치킨 밖에 없는 나에게 그는 곱창과 편백 찜을 소개해주었다. 특히 곱창을 도전했던 건 나에겐 꽤나 큰 일이었는데, 친구들과 친동생이 아무리 꼬셔도 몇 년을 굳건히 버티던 내가 그와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 먹으러 갔다. 나로서는 곱창을 처음 먹는 것이 그에 대한 일종의 호감 표현이었다. "내가 몇 년을 안 먹었는데 드디어 당신이랑 같이 먹어보는 거라고요!"


이 외에도 그는 내가 무언가를 맛있게 먹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아마 자그마한 아이가 자기 얼굴만 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어서 일 테고 동시에 그 음식을 소개해 준 자기 자신이 뿌듯해서였겠지.


나는 그와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너는 벌써 다녀온 곳이 너무 많아"라며 뾰로통하던 그에게 좀 더 새로운 경험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여름에 캐리비안 베이 한 번 가보지 않았던 그에게 워터파크를 데려가 주고 싶었다. 워터파크를 여자친구와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냐고 물어보면서, 차마 나는 만나는 남자친구 마다 꼭 한 번씩 다녀왔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마음이 사랑이구나, 이 사람에게 나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느낄 때쯤 이별을 맞이했다.

ⓒ Daum 영화

그는 자신의 세계를 굉장히 중요시했다. 자신의 확실한 취미 활동이 있었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 나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가 없는 시간을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나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심술이 났다. 그런 마음의 내가 바랐던 단 한 마디는 이거였다. "너랑 있을 때가 제일 재미있지!"


저번 주에 서울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그냥 오랜만에 고전영화를 보고 싶었다. 서울극장에서 '시네 바캉스'를 테마로 영화제를 하고 있었는데 보통 영화제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는 트레일러가 짧게 나온다. 이번 영화제의 트레일러는 역시 고전영화답게 유명한 몇 개의 클립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트레일러를 보는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안정감이 들었다. '아, 내 세계에 와있구나'하고 안도했다. 그곳이 내 세계였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끼어들 수 없는.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첫 영화모임에 참석했다. 아는 오빠가 "이런 곳이 있다더라"라고 해서 한 번 참석했었는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날은 새벽 두 시까지 용산에서 술도 마셨다. 그리고 또다시 안정감이 들었다. '이 곳이 나의 세계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생각이 났다. 나는 당신의 세계를 존중해주지 않았구나.

ⓒ Daum 영화

<보름달이 뜨는 밤>에서 주인공 루이즈는 사랑을 원하지만 구속은 원하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있어도 파티에 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남자친구가 화를 낼 때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선 때때로 거리가 필요한 법이야"라고 가볍게 응수하며 홀로 파티로 떠난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대사는 이거였다. "당신을 항상 필요로 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지. 만약 그런 여자가 나타난다면, 나는 맹세코 물러날게."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주던 루이즈에게 찾아온 건 이별이었다. 결국 외로워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 것이다. 그것도 실수가 아니라,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하면서.


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다른 사람의 만남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다름을 극복해 사랑이 이루어지는 영화는 많다. <이터널 선샤인>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두 주인공은 이별을 맞이했다.


당신은 '다르다'가 이별의 주된 원인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서로 달라서 매일을 싸우는데, 어떻게 평생을 서로 몰랐던 남녀가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이야기했던 것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다름' 자체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다름'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그는 나의 세계를 알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의 세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쿨한 척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쌓여있는 나의 질투가 한순간에 너무 커져버려 방 안의 코끼리가 되었다. 만약 달랐다는 것 자체가 그가 불만이었다면 그는 애초에 나랑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 했겠지.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냥 혼자 살면 되니까. 하지만 그가 말했듯 나와 시원하게 대화로 풀고 싶었다면, 나와 이야기를 해서 그 차이를 조금씩 줄이고 싶었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루이즈가 말했던 당신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해. 하지만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없을까?"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 알랭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지금까지 줄곧 비슷한 사람만 만나왔던 내가 전혀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고 우리는 사랑에 심취해 있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문제를 알면서도 그저 웃고 즐길 뿐이었다. 나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고 그는 그것을 기다려주기엔 인내심이 없었을 뿐이다.

ⓒ Daum 영화

나는 이별의 원인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변할 수 있다고 변하면 된다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작년부터 푹 빠진 미드가 하나 있다. <굿 플레이스>인데, 이 미드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설령 그것이 사후세계라 할 지라도) 누구든지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이다. 즉, 죽어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고 어떤 계기가 있다면 누구나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미드를 아는 사람이, 이 내용을 아는 사람이 나에게 두 번째 기회 조차 주고 싶지 않아 했다. 자신을 일종의 '실험대상'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당신을 실험대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제 본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현우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가 원하지 않는 건 하고 싶지 않아" 딱 그 마음이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을 테니,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달라. 어차피 끝이 좋지 않을 거라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 달라고. 결말을 알아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나는 홀로 이렇게 글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듯 보이지만, 그에게 연락하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애써 외면 중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런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나보다 훨씬 어른인 당신은 구차하고 질질 끄는 이별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 단순히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 참는 것뿐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 편으로는 동시에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홀로 마음에 쌓아두며 나를 마치 삼진아웃으로 퇴장당하는 야구선수처럼 본인의 '선'을 넘었으니 헤어지자며 이별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이제 막 시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리니 정말 허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는지도 모르지.


또 다른 이유는 비참함 때문이다. 정말 이상하게 나에게는 특이한 경향이 있다. 어떤 남자와 헤어지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의 동네 사람을 만난다. 임용고시 2차 스터디에서는 인천에 사는 사람들을 세 명이나 만났고(심지어 구랑 동까지 같았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참석한 모임에서는 하남에 사는 사람을 만났다. 둘이 집이 멀지 않아 함께 택시를 타고 갔는데, 그 친구가 사는 곳이 당신과 헤어지던 날 통화를 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던 곳이었다. 갑자기 일주일 전의 내가 오버랩되면서 비참함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 말이다. 이별을 통보받자마자 급하게 택시를 타고 가던 나를 소름 끼쳐하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 Daum 영화

사랑은 정말 어렵다. 나 혼자 하는 일도 아니고 너무나도 다른 세계를 두 사람이 서로의 차이를 좁혀가는 일이니까. 그 차이를 좁혀가는 길이 괴로운 일이 되느냐, 혹은 즐거운 일이 되느냐에 따라 행복도가 결정되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이별의 결단이 내려진다. 나는 그게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에겐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의 세계를 그에게 보여주는 일도, 그의 세계를 내가 알아가는 일도 큰 결심과 오랜 시간을 통해 정성 들여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별을 맞이했다 다시 만난다 할지라도, 헤어짐의 끝에서 연장선의 개념이 아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서로 막 알아갈 그 때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신을 곧잘 잊는다. '아, 내가 왜 그랬지? 세상에 널린 게 남자랑 술 이랬어!'라고 스스로 되뇌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밤 열 한시가 되면 알림이 울린다. 먹다 남은 피임약을 보면서 당신이 생각난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당신이 생각나고 나의 후회가 생각나고 아쉬움이 생각난다. 내가 왜 진작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후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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