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존중은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엉망 투성인 관계에서 헤매고 있는 내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다흰

열두 시쯤 집에 들어왔을까, 어찌어찌 나의 몸과 마음을 붙잡고 집에 돌아왔다. 밤새 자지는 못했지만 생각 외로 바빴다. 첫 세 시간은 글을 읽었고 다음 세 시간은 글을 썼다. 글을 읽는 동안 이전에 내가 쓴 글을 읽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 당신의 글도 읽었는데, 나의 글이 부끄러워지는 실력이었다. 영원히 당신이 나의 글을 읽지 않길 바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시간은 영화를 보았다.


얼마 전,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지역에서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는데, 영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 몇 년을 미루고 미루다 너무 심심해서 보게 되었다. 나는 상처 받은 주인공들을 좋아한다. 어쩌면 나랑 비슷해서 이고 동시에 주인공들처럼 나 역시 그런 아픔들을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 Daum 영화

상처를 드러내고 극복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글쓰기라고 한다. 따라서 나에게 이 공간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친구들 중에 몇 명만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지 않는 이유는 나의 가족, 연애, 과거, 아픔들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애와 관련해서 현재 진행형인 남자 친구에게는 더더욱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과거로 나를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이고 동시에 나의 말로, 나의 입으로 내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싶어서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말은 나의 글보다 못 하고, 나의 행동은 나의 생각보다 느려서 이별을 초래했기에 그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이제 조금씩 보여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는 아직 당신을 나의 글의 제재로 쓰고 싶지 않다. 아니 어쩌면 아예 쓰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쉬움만 가득 남은 당신의 존재를 몇 글자 안 되는 이 텍스트 속에 박제시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때문에 나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Daum 영화

건강하고 바른 연애는 나와 거리가 먼 듯하다. 아니 어쩌면 할 수 있지만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자꾸 망쳐놓는 것일 수도 있다. 으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관계에 대해 불안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호감을 표현해도 그걸 감지하는 레이더조차 없는 나에게 갑자기 사랑이 찾아온다면 더더욱 그렇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표하면 "아니 왜 이 사람이 나를?!"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 호의에 기반한 행동을 오해하고 의심하고 화를 내고 그러다 결국 상대방이 지쳐 떠나가게 된다. 연인이든 친구이든 어떤 모임에서 새로 만난 사람이든 이렇게 마무리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내 행동의 기반은 '나는 매력적이지 않아'라는 기저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경계를 치고 멀리하고 일방적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런 나의 행동이 나 스스로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몇 년 전 지독한 인간관계를 겪은 이후 나의 행동이 이제 고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건강한 연애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였다. 나의 사고와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꽤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 자신부터 자존감을 올려야 했고 나에 대한 몇몇 좋은 사람들의 호의적인 행동은 우연적이었지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행동 중 어떤 것들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지, 혹은 불편하게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했다. 이 과정이 그리 괴롭지는 않았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 Daum 영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애를 하면 불안에 휩싸인 과거의 내가 불쑥 찾아온다. 내가 고치고 싶었던, 내가 바꾸고 싶었던 예전의 모습이 나와 내가 손 쓸 새도 없이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망쳐놓는다. '이렇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할 거야'라고 착각하면서. 나의 본 모습을 보여줘도 그대로 받아들일 그였는데, 좀 더 어려보이고 싶고 사랑이 필요한 존재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씩 등장하는 과거의 나는 이렇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일에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고 이런 나를 존중하라고 강요한다.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니 당연히 당신이 이해해야 한다며. 대체로 이런 모습을 자주 보이진 않는다. 다만 때때로 과거의 나가 "네가 쉽게 바뀔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외치며 내 안을 무섭게 휘저어 놓는다. 머리로는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하게 되고 이런 나의 행동들이 상대방으로부터 사랑과 애정을 더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행동한다. 그리고 그 상황이 종료된 후엔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와 깨닫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 Daum 영화

조제의 가장 큰 두려움은 '호랑이'이다. 혼자 있을 땐 단 한 번도 호랑이를 보지 않았다. 믿을 만하고 기댈 수 있는 남자친구가 생기면 함께 보러 오기 위해서다. 나에게 있어 호랑이는 '과거의 나 자신'이었다. 남자친구를 끌고 와 "당신은 믿을 만 해! 이런 내 모습을 보여줘도 되겠어!" 하며 나의 호랑이를 보여주고 동시에 떠나지 말아 달라 울부짖는다.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 일이 아닐 수 있을까.


몇 번의 연애를 겪으며 언제나 나의 '호랑이 보여주기' 시도는 실패했다. 상대방이 미쳐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도 있었고 거절했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호랑이를 보여주려고 끌고 온 자체에 불쾌함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조제가 말하듯 나는 그저 '물고기'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분수를 모르고 왕자를 사랑했던 인어공주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물 밖으로 나오려고 애쓰는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내가 너무 과분한 꿈을 꾸었구나"하면서 말이다.


ⓒ Daum 영화

이것이 지금까지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의 호랑이를 사랑해달라고 강요하고 그 결과로 결국 나는 여전히 물을 벗어나지 못한 물고기가 된다는 것. 하지만 지난 몇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의 호랑이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상대방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호랑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나를 덜 사랑해서 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호랑이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혹은 내 호랑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내가 강요할 수도 받아달라고 떼쓸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다만 나의 태도와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호랑이가 있으니 당신이 이만큼 배려를 해야 한다 혹은 내가 물에 다시 돌아간 물고기가 된 기분이 들지 않도록 당신이 더 잘해야 한다. 이런 나의 태도와 행동들이 잘못된 것이었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을까 봐, 나를 덜 사랑할까 봐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은 사실 상대방의 마음을 할퀴고 사랑을 깎아먹는 말들이었다. 그저 조용히 조심스럽게 때가 되면 나의 호랑이와 물에서 헤엄치는 나를 보여주면 될 것을, 이런 나를 위해 네가 더 노력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동안 이런 나의 행동과 말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어떤 노력도 시도해보지 못한 채 그저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 Daum 영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좋은 사람이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랑으로 다가온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번진다면, 행복해 죽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불안하다. 하지만 나에게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람의 말 한마디로 나의 불안은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나의 잘못된 행동들을 되짚어보고 후회하기 시작한다. 저런 철없는 행동들이 혹시라도 그대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늦게라도 손을 써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돌아 킬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그것조차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저 이렇게 글을 쓸 뿐이다.


당신과 만나는 동안 작은 수첩에 일기를 쓰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쓴 것은 아니고 당신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믿음을 가졌을 때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일기는 온통 후회와 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이제부터 더 잘해줘야겠다는 나의 다짐들이 온데 섞여있다.


한 번 닫힌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듯, 한 번 열린 마음 역시 쉽게 닫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되뇌어볼 뿐이다. 그리고 바랄 뿐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마음을 가리지 않기를, 이제 진정으로 조금씩 나 스스로가 고쳐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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